[프리즘]바벨탑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은 시날 땅에 정착했다. 대도시를 건설한 이들은 하늘에 닿을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홍수도 피하자는 심산이었다.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탑 이름을 ‘바벨’이라 불렀다. 여호와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는 이들이 괘씸했다. 사람들 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게 하니 공사가 중단됐다. 땅 이름도 ‘그가 (언어를) 혼란하게 했다’는 뜻의 ‘바빌론’으로 바뀌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다. 인간의 자만을 경계한 내용이다. 여호와가 자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언어의 힘으로 탑 건설을 중단시킨 대목이 흥미롭다. 인류가 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지에 대한 기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호와의 뜻대로 인류는 종족,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쓰게 됐다.

 언어를 통일해보자는 인류의 첫 시도는 19세기 말에야 나왔다. 유대계 폴란드인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1887년에 공표한 만국 공통어 에스페란토어다. 배우기 쉬워 세계로 확산됐지만 통일 언어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 21세기에는 영어가 막강한 힘을 가진 공용어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아직 통일 언어가 아니다. 미래 공용어인 중국어와 스페인어도 마찬가지다.

 통일 언어의 꿈을 접어야 하는가. 대안이 최근 등장했다. 바로 실시간 자동 통역기다.

 미군은 SRI인터내셔널·IBM 등과 영어로 말을 하면 이라크어나 중국어가 실시간으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휴대형 자동 통역기를 개발중이다. 군용이지만 2∼3년 안에 민간에도 보급될 전망이다.

 미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은 아예 목소리를 내지 않고 목과 얼굴에 장착해 입만 벙긋거려도 다른 언어로 바꿔주는 장치를 개발했다. 마침 이 장치 이름도 ‘바벨탑’이다.

 바벨탑을 쌓기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인류의 시도를 여호와가 과연 용인해줄까. 여호와의 뜻대로 각국의 언어를 그대로 둔 채 통역만 하는 것이며 탑을 쌓을 생각도 없으니 용서해주지 않을까.

국제기획부·신화수차장@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