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 시험과 북녘의 핵 실험이 끝나고 6자 회담이 다시 열리기는 하겠지만 잘될 것 같은 예감은 들지 않는다. 이유는 눈사람과 돌연사 이론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뒤의 것은 급속한 지도자 공백이나 실각으로 자연 붕괴현상이 일어나 200만명 이상의 이탈 주민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눈사람 이론이란 방 안이 따뜻한 것은 알지만 녹을 것도 알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즉 개방이 살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녹아버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북녘의 딜레마를 뜻한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주석이 돌연히 사망했을 때 이제는 자연붕괴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기대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이탈주민은 예상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공동선언 이후 2006년 10월까지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다녀온 사람까지 합하면 북녘 땅을 밟은 사람이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느리고 제한적으로 개방이 이루어지고 햇볕정책도 있지만 눈사람처럼 녹아내릴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또 독일 통일을 금과옥조로 들이대고 이에 맞추어 북녘의 실태나 통일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그 어떤 통독 사례도 북녘의 실정에 알맞은 것은 매우 드물어 보인다. 이로 보건대 북녘에 대한 어떠한 전문가나 어떠한 이론이든 모두 허사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원인은 북녘의 처지에서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남녘이나 자본주의 입맛에 맞춰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 있으며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통일 이후의 비전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6.15 공동선언에는 통일은 1국가 2체제에 입각한다는 비전이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수도는 어디에 두고 4각(미·일·중·러)에 대해 남북이 어떻게 설득하며, 심지어 국명과 영토 그리고 국기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북녘을 직접 방문하고 전문가를 만나보았으나 남북녘의 모든 사람이 통일의 당위성만 강조하다가 막판에는 통일노래로 목청을 돋우는 것으로 그칠 뿐이다. 이처럼 구호같이 읊어대는 통일노래를 그쳐야만 통일이 빨리 오며, 통일에 대한 미래 지향점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책임하다고 지적한 바도 있다(2000년 6월 14일자 전자신문).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나는 한민족 정보공동체 구성과 이를 지원할 정보실크로드 구축을 제의한 바 있다. 그 요지는 155마일 휴전선 지역 어딘가에(철원처럼 중간지점 등) 통일수도를 지정하고 국호를 한선(韓鮮)민주연방공화국으로 해 연방 청사·우체국·장터와 연방대학 설립, 영토역사박물관, 예술 공연장, 세계태권도장 등을 구축하고 대륙과 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를 정보 실크로드로 잇자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연방국가의 기능과 영역을 넓혀 가다가 종국에는 통일에 이르게 하자는 아이디어다. 그런데도 공동선언 이후 남북녘 어느 쪽에서도 이런 노력은 없었다. 오히려 남녘은 행정수도를 중부로 이전하고 미군을 후진 배치하면서 북녘의 장사정포 사정반경을 피해 무력충돌을 예비하고 있으며, 북녘은 미사일에다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공갈로 응수하고 있다. 이러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어떠한 선언이나 어떠한 평화협정이 효력이 있겠는가.
11월 3일 중국은 역내 동몽골(내몽골) 주도에서 프랑크푸르트를 잇는 1만㎞ 화물 컨테이너 열차를 개통한다고 보도했다. 이 길은 그 옛날 비단길로서 중국인보다는 거란과 몽골 같은 북방유목 민족이 개척한 길이지만 다시 중국인에 의해 철의 실크로드로 리모델링된 것이다. 한반도의 허리가 잘린 동안 부산에서 파리로 이어지는 고속철도와 정보실크로드가 개척돼 진정한 동서 교통로가 돼야 할 텐데 엉뚱하게도 왕서방이 먼저 재미를 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모두 민족과 통일 이후를 상정하지 못하는 단견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북녘 지도자들이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진용옥 경희대학교 전파공학과 교수 suraeb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