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IT 한국 기상청의 역할

[특별기고]IT 한국 기상청의 역할

 최근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상이변이 심상치 않다. 어디서는 가뭄으로 고통받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홍수로 목숨을 잃는다. 날이 갈수록 기상재해가 빈발하고 피해 규모 또한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겨울에는 폭설로, 봄에는 극심한 황사로, 여름 장마철에는 폭우로 물난리를 겪더니 늦여름 폭염까지 겹쳐 엄청난 고생을 했다. 지난 10월 하순 강원 영동지방에 때 아닌 폭우가 내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 날씨도 과거와 달라졌음을 실감케 한다.

 과학자들은 근래 벌어지고 있는 기상이변의 원인을 지구온난화 탓으로 보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온난화를 막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전 세계에서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과 물 부족, 홍수 등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며 온난화로 인해 치러야 하는 전 세계의 비용은 9조6000억달러로 1, 2차 세계대전 비용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해 인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라는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공동 협력하고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UN의 활동도 핵·경제·테러·식량문제 등 각 나라의 이해득실에 따라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하지만 기상 분야의 협력은 국가를 초월한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지상에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에 상관없이 넘나들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 단독으로 그 나라의 기상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러기에 기상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념이 다른 국가 간에도 기상정보 및 기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왔다.

 자국에서 발생한 집중호우·가뭄·폭설·한파 등에 대해서 다른 국제적 이슈와는 달리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국가 간 우열을 가리지 않는 게 기상이다. 기상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기상 기술의 수준을 좁힐수록 전 지구적으로 빈발하고 있는 기상이변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이러한 협력의 중심에 WMO가 있다. WMO 187개 회원국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관측한 기상자료를 교환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과 돈을 들여 개발한 예보 기술과 기상위성자료도 대가없이 주고받는다.

 기상이변이 화두로 떠오른 이 시기에 70여개국에서 200여명의 기상청 고위 관료 등 관계자들이 서울에 모인다. WMO의 산하위원회 중 핵심적 역할을 하는 기본체계위원회 특별총회가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이 특별총회는 각 국가 기상업무의 기본이 되는 기상관측·자료처리·예보 등에 관한 최신 기술과 정보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이번 특별총회에서 WMO는 우리나라 기상청에 대해 WMO의 각종 지역센터, 즉 ‘자료수집생산센터’ ‘전지구 장기예보 생산센터’ 및 미국과 공동으로 ‘WMO 장기예보 다중모델앙상블 세계선도센터’의 역할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농업기상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세계농업기상 정보서비스 그리드 포털 사이트’의 운영도 우리나라 기상청이 맡아 주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첨단 정보기술을 인정한 결과들이다.

 모든 나라의 기상청 업무의 근간은 ‘관측-자료교환-분석-예보’의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자료교환은 인체의 신경망과 같은 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지금까지 각 국가 간 케이블로 연결된 전용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다. WMO는 이를 현대 정보통신 수단인 인터넷망 자료교환체계로 탈바꿈하는 것을 구상 중인데 우리나라가 지역 센터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후예측모델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1개월이나 3개월간을 예측하는 장기예보 분야에서 선진국은 물론이고 아직 장기예보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에 도움을 주는 단계로 성장한 한국 기상청의 발전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6년 WMO에 가입한 이후 선진국의 지원으로 기상 기술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의 우리나라 수치예보 기술 수준만 해도 선진국의 기술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예보의 정확도 면에서 앞으로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지만 이제 한국도 당당히 전지구 수치모델을 운영하는 11개국에 포함돼 있다. 그동안 ‘받는 협력’에서 우리의 예보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주는 협력’을 하게 됐다. 기상은 전 세계가 하나다.

◆이만기 기상청장 leemk@km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