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지털방송을 추진한 지 5년이 다 돼간다. 과연 국내 시청자 중 어느 정도가 디지털방송을 제대로 수신할 수 있을까. 고가로 구입한 디지털TV가 제대로 구실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때다.
국내 주거유형 중 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66%를 웃돈다. 공동주택은 개별수신이 아닌 공동시청망(MATV)을 통해 방송을 수신하는데, 이 MATV는 공동주택에 있어 방송화질이나 방송선택의 폭을 좌우하는 중요한 설비다.
지난 5월 KBS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아파트의 57% 정도만이 양호한 품질의 MATV를 유지하고, 그 외에는 케이블TV 사업자가 훼손하거나(28%), 노후 또는 방치(15%)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40% 이상의 공동주택에서는 MATV를 통한 지상파방송·위성방송 등의 시청이 쉽지 않다.
그나마 양호한 MATV 설비를 유지하고 있는 공동주택이라도 해당 설비를 통한 디지털방송 시청이 어렵다. MATV 설비 기술 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TV공시청규칙’(정통부령)이 97년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채 아날로그 기술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어 디지털 및 광대역 기술 기준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MATV 설비는 공동주택 입주자가 방송수신을 위해 자신의 비용으로 구축한 것이다. 따라서 MATV를 특정사업자가 독점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MATV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주자가 별도로 아파트 외벽에 개별 안테나 설치 공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은 개선돼야 한다.
이와 같은 불합리성을 해소하고자 지난 5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은 현행 ‘TV공시청규칙’ 개정을 규제개혁과제로 설정하고 개정 이행을 지시한 바 있으나 소관 부처는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송신단과 더불어 수신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디지털방송을 송신하더라도 그것을 수신할 수 있는 시청 환경이 구축되지 않으면 디지털방송 전환은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관련 정부부처는 MATV 관련 기술 기준을 조속히 개정해 시청자의 매체 선택권과 디지털방송 시청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유희락 스카이라이프 영업본부장 yu21@skyli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