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난국에 빠진 민간 경협론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지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족과 형제에 깊게 의존하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사회활동에서 만난 새로운 인간관계로 전환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생각해보면 형제 간의 만남이 가장 오래된 인간관계의 시작이지만 현재 가장 자주 만나거나 가장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형제라는 것은 혈연으로 묶인 끊을 수 없는 끈이기 때문에 평생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해결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대부분 각각의 집안 문제와 형제 관계에서 한두 가지쯤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서 말이다.

 한반도 주변이 시끄러운 지금, 원점으로 돌아가 북한의 존재를 생각해본다.

 태생적인 형제 관계와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에 남북한 문제를 비유해보면 형제 관계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같이 뛰놀며 자랄 때는 한지붕 밑에서 비슷한 사고와 습관을 갖게 되지만 각자 가정을 꾸리고 생활 속에 묻혀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집안 문제나 사회 문제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생경함에 놀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돌아서서 냉철히 생각해보면 다른 견해를 가지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이럴 때는 좀더 잘살고 나이도 많은 맏형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처럼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인내심을 가지고 알아듣게 설득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서로 비슷하게 잘나갈 때는 둘째가 첫째에게 도전하기도 하고 자존심 싸움도 벌이겠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확연하게 서로 격차가 생기게 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한 문제처럼 집안이 시끌시끌하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남북 협력 문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굶주리고 못사는 동생에게 먹을 것을 주며 돕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동생은 흉기를 만들어 옆집을 협박하고 안 도와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소리친다. 이럴 때 맏형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한술 더 떠서 절친하게 지내며 신세까지 지고 있는 옆집 친구가 저런 동생은 도와주지 말고 함께 때려줘야 정신차린다고 말한다면 더욱 고민스럽다. 그냥 놔두자니 동생집의 어린애들은 다 굶어 죽을 것 같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집 애들까지 해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옆집에 사는 힘센 이웃은 이번에 단단히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벼르고 있고 그 옆집에 사는 이웃은 자기네도 흉기를 만들겠고 하니 설상가상이다. 참으로 곤란한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어떤 이는 인질극에 비유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이 직접적인 인질이고 강경 진압 부대는 미국과 일본이며, 우리 정부는 그 사이에 낀 협상자(네고시에이터)라는 것이다. 인질이 다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네고시에이터는 인질범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협상의 제일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질범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강경진압 부대와 인질범의 극단에 낀 우리 정부의 처지가 바로 이럴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은 극단적인 발언이나 의사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 사태 호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용히 협조하는 것만이 난국을 벗어나는 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 민간 협력의 주체들에게 급격한 행동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위험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소극적이더라도 향후 민간 경협의 미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는 분명히 북한 측에 전달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의 어떤 정책보다도 핵 실험과 같은 무모한 시도가 미래의 사업 전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nam@da-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