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유럽 속의 사이언스코리아

[ET단상]유럽 속의 사이언스코리아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유럽을 여행하는 많은 젊은이를 볼 수 있다. 이는 유럽이 인접한 여러 국가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다양한 문화와 풍물을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만큼이나 유럽은 다양한 기초과학 및 산업기술의 원천지이기도 하다. 단기적인 경제 효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프랑스 CNRS, 독일 막스플랑크 등의 기초연구기관과 대학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척해왔다.

 근래 들어서는 유럽이 미국 등에 비해 기초기술을 응용하고 상업화하는 데 뒤지면서 선도적 위상에 손상을 받고 있지만 기초과학 연구 및 교육에서는 아직 세계적으로 큰 혁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정밀화학·자동차·기계 등의 산업 분야에서 강한 산업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래 지식경제의 기반이 될 나노·바이오 기술 개발 및 응용 분야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바이오 산업은 매출 총액과 연구개발비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바이오 기업에 대한 공공 부문의 초기 지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위다.

 유럽의 엄격한 환경 및 보건에 대한 규제 정책은 미래를 선도하는 환경·보건의료 산업 육성을 촉진했으며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혁신적인 기업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내년부터는 지식기반 경제의 기반이 될 과학기술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제7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이 유럽연합(EU) 주도로 전개된다.

 제7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에 따라 나노·바이오·정보통신·환경·에너지 등 전략적인 중점연구 분야에 7년간 총 505억유로가 투자될 예정이다. 과거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이 경쟁 이전 단계의 응용을 중점 지원한 것과 달리 7차 프로그램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순수 기초연구 사업과 기술확산 및 상업화를 강화하는 기술플랫폼 사업을 도입했다. 테러나 재난에 대비하는 보안기술 분야가 추가된 것도 7차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초과학 성과 창출과 동시에 연구물을 경제적 성과로 연계하고자 하는 EU의 정책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통합이 진전되고 EU가 확대되면서 많은 한국 기업이 무역장벽 극복과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동유럽권에 생산기지를 집중 설치했고 일부 대기업은 현지 연구소를 설립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한·유럽 협력도 지금까지는 그 잠재력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었지만 양측의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협력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기술 분야별로 수준 격차가 크고 기초과학이 취약하기 때문에 국제협력에 개방적이며 기초연구에 강한 유럽과의 호혜적인 협력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만간 우리 과학기술부와 EU 간 과학기술 협력 협정이 체결되면 유럽과의 협력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독일 자르브뤼켄에 있는 KIST 유럽연구소도 한·유럽 과기 협력 활성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연세대 공과대학이 나노·바이오 분야의 공동연구를 위해 KIST 유럽연구소 내에 현지 랩을 설치했으며 국내 여러 출연 연구기관도 로봇 부품, 위성안테나, 바이오센서 분야에서 현지 랩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한국과 독일 주 정부 공동 투자로 구축된 KIST 유럽연구소는 현지 연구기관과 바이오센서, 메카트로닉스 분야 고유 원천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의 EU 프레임워크 참가 지원 등 기술협력 거점으로 위상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KIST 유럽연구소가 소재한 독일 자르브뤼켄은 내년 프랑스 고속철도 TGV와 독일 고속철도 ICE가 연계되면 파리와의 거리가 2시간대로 가까워진다. 유럽의 대표적인 고속철도 ICE와 TGV가 만나게 될 이곳이 한국의 강점과 다양한 유럽의 과학기술 성과가 가까이 만나는 교량이 되고 호혜적 협력을 통해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과학기술 혁신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김창호 KIST 유럽연구소장 kimch@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