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끄럽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반도체 대기업들이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재료업계와의 상생 협력을 다짐한 행사가 그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대기업 임원은 연방 “디바이스(반도체) 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정부(산업자원부) 측에도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동안 당연히 여유있는 대기업이 했어야 할 일을 정부가 앞장서서 해줬다는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사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재료 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율은 18% 수준이다. 그나마 높다는 웨이퍼·가스·포토레지스터 등 원부자재 분야도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임원은 “본래 반도체 장비가 최첨단 분야로 앞서가고 나중에 반도체 업체가 이를 적용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나라는 장비업계의 여건이 여유롭지 않아 그렇지 못한 상태”라며 “이번 상생협력식을 계기로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생협약 내용을 보면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동부일렉트로닉스 등은 팹을 개방해 장비 업체들이 자유롭게 장비를 테스트할 수 있게 한 부분이 눈에 띈다. 그동안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라는 제품 특성상 장비나 재료, 하나만 잘못되더라도 제품 양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팹 개방을 꺼려왔다. 제품 불량으로 인한 리스크는 물론이고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정부가 중개를 했지만 CEO의 대단한 결단 없이는 성사되지 않았을 일이다.

지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연간 50∼60조 규모에 이르는 등 호황이다. 반도체 장비 시장 역시 연간 60조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다. 더욱이 최근 장비시장 수요가 미국·유럽·일본 주도에서 빠른 속도로 아시아지역(중국·대만 등)으로 옮겨오고 있다. 결국, 아시아 시장을 잡으면 세계 시장을 잡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모처럼 찾아오고 있는 호기를 이번 반도체 대기업과 중소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상생협력을 통해 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정책팀·주문정기자@전자신문,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