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분별한 특허공세에 대비해야

 해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장비업체들의 대대적인 특허공세는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장비업계에 결정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외국 장비업체들이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국내 기업들에 보낸 경고장은 지난 2003년 11건에서 올해 72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최근 외국 장비업체들의 움직임을 고려하면 내년에도 100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니 걱정이다.

 경고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소송이 그만큼 증가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소송진행 건수가 2003년 10건에서 올해 103건으로 늘었고, 이에 따른 소송비용도 10억원에서 올해는 무려 20배 이상 늘어난 205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외국 장비업체들의 특허공세에 따른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특허공세에 시달리게 되면 당연히 영업이나 연구개발(R&D)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들의 특허공세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이 13%에서 올해 7%까지 떨어졌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외국 기업들의 특허공세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제 막 국산화에 성공해 해외 수출에 본격 나서는 시점에 맞춰 이뤄지고 있고, 대부분 위협용이라는 점이다. 외국 기업들이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한 것 중 70%가 무효로 판결됐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이는 외국 기업들이 불완전한 특허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R&D나 영업을 가로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무리 실체가 없는 특허소송이라고 하더라도 받는 측에서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특허소송이 제기된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사용자 처지에서는 더 큰 문제다. 구태여 문제가 되는 제품을 구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법정에서 무효로 판결이 나더라도 그 기간에 국내 기업들의 영업을 방해할 수 있다면 외국 기업들로서는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앞으로 외국 기업들의 공세가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갈수록 거세질 외국 기업들의 특허공세에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장비나 소재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 가장 먼저 이 분야의 특허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특허가 출원되고 등록됐으며,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허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더라도 이 제품이 특허에 걸리는지 아닌지를 기업들 스스로 판단해 무분별한 외국 기업들의 특허공세에 대비할 수 있다.

 특허청도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이 특허소송을 제기했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내용을 알리고, 국내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제품 및 기술에 대해 세계를 대상으로 특허등록이 가능하도록 정부 지원도 대폭 강화돼야 한다. 단순히 제품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된 제품 중 특허출원이 가능한 기술과 제품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기업들의 지원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외국 기업들의 특허공세가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이 분야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첨단 분야의 외국 기업들은 지금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허전쟁을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을 쉽게 넘볼 수 없도록 지금이라도 정부나 기업들은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