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콘텐츠는 누가 맡을까…

통신·방송기구가 개편되면 콘텐츠는 누가 맡을까. 새 통합기구가 맡는 게 당연한 절차일 수 있지만 문화관광부 쪽에서 들으면 경을 칠 소리다. 문화부는 새 통합기구가 출범하면 누가 뭐라 해도 콘텐츠 업무는 자신들의 소관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가 지금까지 결정한 것은 ‘각 부처의 콘텐츠 업무를 독임제 행정부처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추진하도록 건의하겠다’는 게 전부다. 이 대목에서부터 문화부는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얼마 전 국무조정실 관계자가 이 문장을 ‘각 부처의 콘텐츠 관련 업무의 통합 문제는 추후에 별도 논의한다’로 에둘러 발표했다가 강하게 항의를 받은 것만 해도 그렇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겠지만 문화부 측에서 보자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논의가 어디까지 진전이 됐느냐, 또는 업무 소관 경쟁자가 몇 이 되느냐에 따라 문화부로서는 셈법과 전략이 달라지게 돼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문화부로서는 콘텐츠 업무가 다른 기구에 흡수된다면 조직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보는 듯하다. 몇 년 전부터 콘텐츠의 융성 기운을 알아보고 ‘문화산업’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던 문화부다. 장관이 직접 나서 콘텐츠 소관부처로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속내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콘텐츠의 ‘콘’자만 나와도 일희일비하는 문화부를 액면 그대로 이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콘텐츠 소관업무가 과연 특정 부처의 생존 차원에 연계해봐야 할 사안인가 하는 점이다. 가령 새 통합기구가 백번 양보해서 콘텐츠 업무를 문화부 소관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치자. 이럴 경우 오랫동안 IPTV 서비스를 준비해온 KT와 같은 통신망 사업자는 통합기구와 문화부의 정책 가운데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KT는 기본적으로 망사업자니 새 통합기구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망 위에서 방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니 콘텐츠 소관부처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반대 주장도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통신망 사업자의 입장은 어떤가. 아직도 망사업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거나, 콘텐츠사업자로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고 싶다는 단순한 사업자가 있을까. 망이란 끊임없이 진화해야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진화는 투자를 전제로 하게 마련이다. 사업자들은 투자비용의 조달이 끊임없는 망의 부가서비스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논리는 반대로 방송과 같은 콘텐츠 사업자가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망을 확충하려는 계획에도 그대로 적용될 터다. 그런 점에서 통·방융합의 필요성은 이런 선순환 고리를 매끄럽게 이어주자는 데서 제기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통·방융합을 하자는 마당에 콘텐츠 업무 소관 문제가 돌출된 것은 아이러니다. 물론 기구 개편 과정에서 다소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콘텐츠의 성격이 이러이러하니 여기까지는 이곳에서 맡고 저기까지는 그곳에서 맡으라 하는 식의 곁 훈수도 마뜩지 않다. 기구개편을 하자 해놓고서는 직원신분이나 보수문제부터 거론하는 것조차 아직은 볼썽사나운 판국이다. 일이 자꾸 이런 식으로 갈리게 되면 통·방융합이란 게 세로로 갈라놓은 떡을 가로로 잘라보자는 식의 조삼모사와 다를 게 없어진다.

 통·방융합, ‘시작이 반’이라 했는데 시작은 했으되 반을 넘기가 여전히 버겁다. 5년, 아니 10년을 별러온 통·방융합이다. 일단 통합부터 한 뒤 그 속에서 화학적 반응을 기다려보는 게 순서다. 아직은 내것 네것 따질 때가 아니다.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 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