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국가의 역할
장하준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펴냄, 1만6000원
국가의 역할을 줄이면 줄일수록 경제가 이롭다는 주장을 펼치는 신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볼 때 현재 부동산 사태는 전형적인 정부의 실패작이다. 그러나 과연 “신자유주의 옹호자의 주장이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할까?”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모순과 개선할 점은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경제 부문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역할은 예전부터 논란이 많은 주제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가장 뜨겁게 진행된 시기는 아무래도 지난 20여년 동안이라 할 수 있다. 이 무렵 시대의 총아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규제 없는 시장의 미덕을 설파하고, 탈규제와 개방·민영화를 설교했다.
이와 같은 최소 국가 내지는 친기업적 정부에 관한 주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부상한 세계화 담론과 결합하면서 한층 더 강화됐다. 특히 상당수 개발도상국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추진됐다. 그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시도한 것이었으나 상당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다국적 기구와 채권 국가의 압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나서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외부 개입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입 범위가 계속 확장됐음에도 신자유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은 공언했던 것과 같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개혁 성적표는 대단히 초라하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실시된 국가들의 경우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물론이고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이 증대됐고, 이에 따라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분열이 빚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실패는 경제 성장조차 촉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에 재직 중인 이 책의 저자인 장하준 교수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대한 이론과 실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둘러싼 논쟁사, 구조조정 시대의 국가의 역할, 초국적 기업의 등장과 산업 정책, 경제 발전에서 지적재산권의 역할 등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는 개발도상국의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점을 일일이 밝히고 이 문제를 개선할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초기 시장 형성과정에도 있었고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다. 그중 상당히 이론적인 것도 있고 다소 실증적인 주제에 치중한 것도 있다. 또 국내 정책은 물론이고 국제적 정책에 관련된 다소 넓은 범위의 글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에 입각한 접근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과 함께 하나의 화두를 제시한 셈이다. 과연 우리의 미래를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하는 시장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우리 손으로 뽑은 정부로 하여금 결정할 것인지, 그 대답은 이 책의 독자가 내려야 할 것이다.
김현민기자@전자신문, mi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