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이자 미국 현대사의 기인’ ‘할리우드의 흥행감독이자 항공업계의 선구자’ ‘에비에이터’.
18세에 휴스공구회사의 상속자로 백만장자가 돼 20세기 중반 미국의 영화·항공·카지노를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인물 하워드 휴스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지난해 초에는 하워드 휴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에비에이터’가 국내에서 개봉됐고 때를 같이해 전기물이 잇따라 발간되기도 했다. 하워드 휴스는 193㎝의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이지적인 마스크를 가진 비행사였다. 두 번의 큰 비행 사고를 당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도 하늘을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낭만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휴스항공사·TWA·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로열을 소유한 억만장자는 말년에 강박관념과 결벽증으로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가 죽고 그의 재산을 둘러싼 사촌동생들의 끈질긴 법정싸움은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의 주된 재산인 휴스항공사와 TWA 그리고 영화사 등 주식은 생물학과 의학연구를 위해 설립한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에 기증됐다. 재산이 11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는 세계적인 첨단과학의 산실로 자리 잡았고 DNA·나노·정신·뇌 등 미래 기술을 이끄는 최우수 과학자를 발굴해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미 한국인 과학자인 하택집 교수(미 일리노이주립대 물리학과)가 ‘하워드 휴스 그랜트’를 지원받는 연구원으로 선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기술과 과학자를 발굴하는 기준이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장의 말을 빌리면 ‘굉장히 좋은 개발 분야지만 90%는 실패할 것 같은 아주 어려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연간 100만달러(5년간)에 이르는 지원규모도 놀랍지만 일단 선정되면 연구비를 특정과제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최근 들어 기초과학 분야에도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고 성과 위주의 연구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소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주문정차장·정책팀,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