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국내 장비업체에도 평등한 기회를

 반도체·디스플레이산업과 인연을 맺은 지도 12년째다. 인연은 지난 95년 국내 반도체소자 대기업 입사로 시작됐다. 2년 동안 근무하다 뜻이 있어 국내 장비업체로 옮겨 3년간 열정을 다해 일했다. 그후 미국에서 MBA 도중 세계 최대 장비업체인 A사의 특정 프로젝트에 채용돼 일하게 됐다.

 해당 산업현장에서의 이력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몸 담고 있는 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가 아니라 A사에서 근무할 당시 느꼈던 의아함을 전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A사에 근무할 때 M램(Magnetic Random Access Memory)의 비즈니스 플랜을 담당했다. 2002년 당시만 해도 M램은 차세대 메모리의 최고 유력 후보로 떠오르면서 대학과 기업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장비업체인 A사는 당시 M램 시장이 과연 언제 열릴 것인지, 시장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초기 연구단계에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정리된 자료가 없었고, 있다 해도 입수는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여기저기 구두로 문의하는 수고를 통해 현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각종 논문 및 자료도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A사의 수요처가 될 국내 대기업의 개발 현황 및 사업화 관련 동향이었다.

 일개 연구원 신분이었지만 나는 무턱대고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M램 관련 부서에 직접 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저는 A사에서 M램 비즈니스 플랜을 준비 중이며, 이러저러한 자료가 필요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은 M램부서 관계자는 e메일과 우편을 통해 관련자료를 보내왔다.

 일반적인 자료가 대부분이었지만 자료의 유용성을 떠나 해외 거대 장비업체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국내 대기업에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이후에도 국내 대기업의 A사에 대한 ‘대접(?)’을 보면서 국내 장비업체에서 일할 당시와 비교하며 너무나 큰 차이를 실감했다.

 그후로 4년이 흘렀고, 나는 현장을 떠났다. 국내 장비업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요즘은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 개연성만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국내 수요 대기업이 정보나 전략적인 파트너십 선정 및 개발지원 면에서 외국 거대 장비업체들과 최소한 평등한 기회만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보현 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 팀장 bpark@kodem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