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2억원 짜리 아파트를 팔고 벤처사업을 시작했는데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으로 치솟아 있더군요. 경기 불황으로 사업은 제자리걸음인데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
토종 솔루션 개발업체 A 사장이 지나가는 투로 내뱉은 말이다. 워낙 유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안주’ 삼아 꺼낸 이야기지만 얼굴에는 쓴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요즘 무슨 모임에서든 부동산은 ‘깔때기’다. 심각한 다른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꼭 부동산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린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인터넷 사내 정보 공유 코너에는 부동산 관련 게시물이 조회수 1, 2위를 달린다. 오늘도 은행 창구에는 종합부동산세 문의로 전화가 빗발쳤다.
“저도 내로라하는 벤처 사업가인데 문득 제 꼴이 우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아내가 분당에 사둔 아파트의 시세 차익만큼도 아직 벌어다 주지는 못했거든요.” (B회사 사장)
“직원 350명 월급을 챙기다보면 올해도 적자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1년 사이에 1억씩 오르는 아파트를 보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350명과 그 가족을 돌보는 IT업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야 순리에 맞는 게 아닐까요?” (C 회사 상무)
어느새 부동산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 부동산 문제가 벤처 정신까지도 갉아먹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뭉친 벤처가 부동산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외산 SW 제품이 판치는 국내 현실에서 내일을 향해 조그만 더 노력해보자고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머쓱하다는 게 이들 벤처 기업가의 한탄이다.
다시 A 사장에게 물었다.
“사업에 나선 것을 후회하십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서 아직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벤처의 꿈과 희망’이 ‘부동산 대박의 꿈’을 이겨내는 듯 보이지만 부동산 문제는 오늘도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 정신이 아직은 IT코리아의 동력임을 믿고 싶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