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방융합,다시 지혜를 모으자

 통신방송융합기구 설립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한나라당이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공식 반대 의견을 피력한데 이어 방송위원회도 직무 독립성 미흡을 이유로 정부안에 거부 의사를 표명, 융합추진지원단에 파견된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국회 심의 과정에 들어가기도 전에 방송위원회가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을 보면서 과연 이런 방법 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내년중 과연 융합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을까 회의감마저 든다.

이번 법안 제출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보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방송개혁위원회 활동을 다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든다. 논의의 수준이나 견해차를 극복하는 과정이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억상실증이 중증임을 실감하게 된다.

DJ정부시절 방송개혁위원회는 사회 각계 각층을 망라하는 범정부적 기구로 출범해 기대를 모았으나 행정 부처간 영역 다툼,통신과 방송을 바라보는 사업자들간 극명한 견해의 차이 등으로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특히 △위원 숫자와 정당별 추천권 △K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대표 임명 절차 △위원장의 국무회의 출석 및 발언권, 법률안 제출권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시청자 권익 확보 등 문제로 시끄러웠다. 결국 방송개혁위원회는 융합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융합위원회의 설립을 견인하지 못한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를 건의하는 선에서 마침표를 찍어야했다. 그만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융합위원회 설립안을 놓고도 비슷한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 DJ 정부 시절 녹음 테이프를 다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IPTV등 새로운 통신방송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시계추는 DJ시절로 자꾸 되돌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융합위 설립문제를 놓고 현재 이해관계자들간 분열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심지어 차기 정부에 이 문제를 넘겨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견 타당한 문제제기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힘들다. 정부는 내년 1분기중 임시국회에서 융합위 설치에관한 법률을 통과시키고 5∼6월까지는 융합 조직을 출범시키겠다는 일정을 세워놓고 있는 모양이다. 참여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더욱 심해질텐데 걱정이 앞선다. 설사 융합 조직이 출범한다고 해서 잘 굴러갈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융합 기구의 설립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미 융합위원회의 설립은 DJ시설에 합의했던 것이다. 차기 정부에 이 문제를 이관할 경우 DJ정부 시절 녹음 테이프를 또 다시 지겹도록 들어야만 한다.

물론 최선안을 도출하기는 힘들겠지만 현재 수면위로 드러난 갈등을 수습하고 추스려가는 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한다. 충분치 않지만 정부 각 부처와 정당들, 이해집단간에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이 아직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나와 있는 정부의 입법안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융합위원회 위원을 대통령이 모두 추천,임명하는 것은 그동안 의 합의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당연히 야당의 위원 추천권도 보장되어야한다. 방송위원회가 제기한 위원회의 독립성 문제 역시 대안은 없는지 검토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무조건 딴죽을 걸 때가 아니다. 사회적인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내야한다.

오늘부터 정부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공청회와 토론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정부가 내놓은 안을 전면 부정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정부와 각 이해관계자들의 열린자세와 협상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