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뉴욕타임스에 월드와이드웹의 창안자인 팀 버너스 리가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안한 것이 보도됐다. ‘웹 사이언스’라고 부르는 이 분야는 기술과 사회가 만나는 새로운 혁신적 과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MIT와 영국 사우스햄턴 대학은 이 연구를 같이 수행하기로 했으며 구글의 에릭 슈미트 CEO는 정보 진화의 다음 단계를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라며 이를 지지했다.
팀 버너스 리는 ‘웹은 컴퓨터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연결된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웹 사이언스는 지금까지의 컴퓨터 과학으로 풀어갈 문제가 아님을 지적했다.
이것은 웹에 기반을 둔 이른바 소셜 컴퓨팅에 관한 연구이고 사회과학·인문과학이 자연과학과 공학을 만나는 접점이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소셜 컴퓨팅 연구와 논의가 있었고 영국에서는 국가적으로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소셜 소프트웨어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싸이월드·지식인과 같은 매우 활발한 소셜 컴퓨팅 기반의 서비스 초기 모델을 만들었으나 고도화하지도 글로벌화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컴퓨터 과학 역시 현재 위기다. 기본적인 교과과정은 차별성도 없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실제 교수들의 탄식이다.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과학과 타 분야의 접목과 융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를 총체적으로 말한 것이 바로 웹 사이언스다.
웹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신뢰·아이덴티티, 집단 지능의 구현, 미디어로서의 인터넷·블로깅의 사회적·정치적 의미와 그룹 의사 결정, 온라인 평판 등 이와 같은 사회적 주제가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이를 위한 컴퓨팅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문화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창의성에 접근했듯이 이제 웹 사이언스로 새로운 21세기형 학제적 연구를 시작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제 우리가 웹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공학의 주제가 아니며, 인터넷에 지능을 넣는 문제는 더는 인공지능 기술만의 영역이 아니다. 위키피디아는 인공지능이 없어도 탁월한 집단 지능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지적 경쟁력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구축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이제 인터넷 기업만의 숙제는 아니다.
웹 사이언스의 또 다른 시급성은 웹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우리가 연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쟁자가 발빠른 웹 사이언스 연구로 그 기반을 튼튼히 해나간다면 우리의 인터넷 문화와 경쟁력은 추락하고 말 것이다.
웹 기반의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와 지식 중심의 사회를 갖추어야만 진정한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몇십만, 몇백만이 앉아서 게임이나 쇼핑만 하고 내일이면 아무 가치가 없어질 휘발성 콘텐츠만 만들어내는 나라가 인터넷 강국은 아닐 것이다. 올해 뜨거운 관심을 끌어낸 웹2.0 역시 웹 사이언스의 연구가 뒷받침돼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몇 가지 특성과 기능만을 흉내내는 잡다한 미투(me-too) 사이트만 나올 것이다.
대학·연구소·정부·기업이 진정으로 인터넷 기반 경제를 고도화하려 한다면 이제 웹 사이언스 연구를 기반으로 우리가 가진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이것이 미래의 정보산업이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의 기업정신과 연구능력, 벤처기업의 영세성을 감안했을 때 이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더욱 빨리 뒷받침돼야 한다.
◆한상기 오피니티에이피 사장 steve@rev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