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성공한 CRM의 특별한 비결

길지 않은 국내 IT역사에서 고객관계관리(CRM)만큼 탄생부터 부흥과 소멸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빠른 경험을 한 시스템도 많지 않을 것이다. CRM이 처음 국내에 소개됐던 2000년 초반, IT업체뿐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CRM에 큰 투자를 감행했지만 수익 증대에 기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투자 회수(ROI)조차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5년여가 흐른 지금 여전히 CRM은 기업에서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고객중심의 경영’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로 CRM이며 모든 기업의 지향점 역시 바로 ‘고객’이기 때문이다.

 CRM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업 특성을 고려한 전략과 조직 등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준비보다는 IT시스템 구축이 CRM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둘째, 고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셋째, 장기적인 경영진의 의지와 전 조직적인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 CRM 도입 직후 실질적인 경영 성과가 드러나지 않자 많은 경영진이 CRM 도입을 실패로 규정하고 포기하거나 CRM을 IT 부서의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관련 비즈니스 부서의 협조 및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례가 매우 많다.

 KB국민은행의 CRM 도입 사례는 조직·프로세스·IT시스템을 포괄하는 전행 차원의 통합 CRM을 전사적인 노력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국민은행의 전행 통합 CRM의 성공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다. 은행장 이하 전 임원진이 통합 CRM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 부서가 협력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전 직원의 관심과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관련 사업부 간 공조체계 구성이다. IT 개발 위주의 프로젝트 진행이 아니라 현업 부서 중심의 프로젝트 진행 및 프로젝트 태스크포스 내 관련 사업부 전체를 참여시킴으로써 전사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셋째, 프로젝트 실행 주체 간 시너지 달성이다. CRM 방안 설계의 주체와 시스템 구현의 주체가 프로젝트 진행과 종료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설계 단계와 구현 단계의 단절에 따른 비효율성 및 왜곡을 방지했다.

 마지막으로 실행력 제고를 위한 세부 추진방안 수립이다. CRM의 실질적인 성과는 영업점 참여로 이루어지는만큼 영업점 평가 항목에 CRM 항목 가중치 증가, 행내 각종 캠페인 및 성과 포상을 통해 CRM 체계 활성화를 이룰 수 있었다.

 국민은행의 성공적인 CRM 도입에 따라 기업·하나·우리은행이 각각 CRM 진단 및 시스템 도입을 준비 중이다. 보험업계도 삼성생명을 시작으로 CRM 전략 수립 및 시스템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전행 통합 CRM 도입은 과거 CRM 도입을 통한 비즈니스 효익 달성에 실패한 국내 금융권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의 핵심역량 및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CRM 도입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명확히 수립된 CRM 비전 및 전략을 기반으로 조직·프로세스·IT시스템 전체가 유기적으로 변화해야만 CRM 도입의 실질적인 성과 및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국내 금융권에서 CRM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기업 특성을 감안해 명확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액센츄어와 함께 세계적인 CRM 경향 및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 기반에서 국민은행의 특성을 감안한 과제를 정의해 조직 내 공감대와 추진력을 확보했다.

 조직·프로세스·IT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기업 전체의 CRM을 조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와 같이 선진국 또는 경쟁사의 시스템 도입에 자극받은 무분별한 시스템 도입이 아닌 명확한 전략 아래 관련 조직 간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수립, 캠페인을 포함한 마케팅 전반의 프로세스 재설계가 요구된다.

 IT시스템 활용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CRM의 실질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IT시스템의 지원 및 활용을 통한 지속적인 고객 정보 갱신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인 CRM이 필요하다. CRM은 일회성 마케팅이 아니며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마케팅, 고객 서비스 향상을 통해 그 효과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경영층부터 영업사원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고 지속적 활동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스티븐 리 액센츄어 부사장 steven.b.lee@accen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