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R&D대국 중국의 이면

중국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대약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오는 2010년까지 20만명의 해귀파(海歸派, 해외 유학파)를 유치해 중국의 R&D 부문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중국을 먹여살릴 미래 기업인으로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중국 전역에 중관춘과 같은 미래산업 및 인재양성단지를 건설하고 150개의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립해 해귀파의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실행계획도 내놓았다. 수치상으로 보면 중국은 이미 R&D 대국 반열에 진입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R&D 부문 투자 규모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특허출원 건수는 독일을 추월, 세계 5위다. 거기다 풍부한 R&D 인력은 중국 R&D 부문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매년 35만2000명의 엔지니어가 대학에서 배출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의 4분의 1이 중국계다. 더욱 고무적인 현상은 지난해 17만명의 해외 유학생 중 3만명이 중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중국 R&D 부문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CLSA증권이나 매킨지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R&D 부문에서 혁신을 해야 하지만 법률적·경제적 토양이 매우 척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 R&D 부문의 한계를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특히 중국 연구자들의 창의력 부족과 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의 관료적 통제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중국 연구자의 과학 논문 게재건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논문을 기고할 수 있는 연구자는 매우 드물다는 지적이다. 연구 생산성 지표인 논문당 평균 인용건수는 세계 100위권을 밑돈다. 글로벌 기업의 중국 R&D센터도 아직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현재 중국에 250∼300개의 글로벌 기업이 R&D센터를 두고 있지만 혁신적인 성과를 내놓는 곳은 30개 안팎에 불과하다. 외국계 기업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의사소통능력과 업무 수행능력을 갖춘 대졸 출신 엔지니어가 적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대학 등 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의 규제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관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연구기관이 성과주의에 매달리면서 여러 폐단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구윤리의 실종이다. 지난해 발생한 첸 진 상하이자오퉁대학 교수의 연구 부정 사건은 중국의 이 같은 풍토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모토로라의 마이크로 칩 기술을 마치 자신의 성과인 양 내놓으면서 중국 과기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선진 금융시스템의 부재도 중국 R&D 부문의 건전한 육성에 걸림돌이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대기업이 중국 금융기관신용 대출의 70%가량을 장악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R&D의 사업화를 꿈꾸는 창업자들이 자본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재권 위반 행위나 짝퉁 제품의 범람도 R&D 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의 R&D 부문은 희망적이다. MS·인텔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이 복잡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대학 또는 다른 기업과 협업 연구를 진행하면서 선진 R&D 방법론을 체득하고 있다. 여기서 축적된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R&D 부문 전반으로 확산되는 ‘스필 오버(spill over) ’효과가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최근 글로벌 IT기업인 인텔이 한국 내 R&D센터를 철수키로 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기업의 철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중국 R&D 부문의 눈부신 성장과 문제점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볼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