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0일 전국 450개 상영관(스크린)에서 일제히 개봉했던 영화 ‘중천’이 눈물을 머금었다. 국내 스크린 가입률 90%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1월 9일 기준 누적 관람객 수가 150만명 정도에 그친데다 관객이 늘어날 조짐이 없어서다. 제작비 104억원을 감안하면 ‘남기지 못한 장사’가 되리라는 게 중론이다.
기자도 ‘중천’을 봤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12개 국내 컴퓨터그래픽(CG) 전문업체가 만들어낸 장면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만재 ETRI 디지털콘텐츠연구단장은 “굳이 가격(20억원) 대비 효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 유명 영화의 CG와 당당히 견줄 자신이 있다”고 말했고, 기자는 100% 수긍했다. 그러나 관람객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기자가 본 ‘중천’은 “정말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였다. 가슴에 남은 것(감상) 없이 머릿속에 CG만 남았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와 관련, “CG는 훌륭했지만 영화를 끌어가는 서사라든가 연기, 연출력, 주제 등이 어우러져야 기술력(CG)도 함께 빛나는 것”이라며 “기술이 하나의 작품, 즉 콘텐츠를 끌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특히 “CG가 발전하면서 창작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반드시 예술적 상상력, 주제의식, 연출력 같은 것에 연결될 때 놀라운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며 “‘괴물’과 같은 영화는 아주 성공적으로 잘 결합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영화 ‘괴물’도 총제작비 143억원 가운데 40억∼50억원을 CG에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천’과 체급(투자 규모)이 비슷하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영화가 상영된 이래로 가장 많은 관객(1302만명)이 봤다. 지난 8일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1차로 정산해봤더니 흥행수입 358억원, 수출 55억원, 방송판권 31억원 등 모두 455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143억원을 투자해 무려 312억원을 남긴 것이다. 기자도 ‘괴물’을 봤다. CG는 물론 가슴에 많은 게 남았다.
우리 영화가 갈 곳은 ‘중천’이 아닌 ‘괴물’이다. 이은용 차장·정책팀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