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를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삼는 일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그러나 경제의 모든 분야의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을 세계 소프트웨어 생산기지로 만든다는 꿈도 이미 중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한풀 꺾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부활에 따른 극심한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사태에 우리가 무엇인가 할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을 기르려면 이제는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옛날에는 석사학위는 당연히 논문을 써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용주의 나라 미국은 MBA라는 제도를 도입, 고급 직업훈련과정에 대해서 논문 없이 석사학위를 주기 시작했다. 또 미국에서는 의사 자격을 획득하면 Ph.D.가 아니라도 ‘닥터’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나라 개업의처럼 박사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별 소용도 없는 Ph.D.를 따려고 하지는 않는다. J.D.(Juris Doctor, doctor of low)도 마찬가지다. 학부(4년)를 졸업하고 3년의 법률교육을 받으면 수여하는 법률 분야의 닥터다.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 후 5년간 소프트웨어의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Doctor of Software’를 수여하자.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먼저 입학을 할 때는 기업 추천을 받는다. 그리고 1학년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초를 공부한다. 2학년은 현장에서 인턴을 한다. 3, 4학년은 강의와 아울러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5학년은 그 사이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을 보충하면서 기업에 가서 다시 인턴을 한다. 결론은 기업이 바로 쓸 수 있는 고급 인력을 학교와 기업과 국가와 학생이 협동해 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고 이 재원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 프로그램으로 고급기술자를 10만명 양성하면 취업이 확실한 일자리 창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고급인력이 한 사람 있으면 그 아래 저급인력이 일할 자리가 따라서 생기게 되므로 일자리는 훨씬 많아진다. 대학은 많은 학생을 보유하게 된다. 현재는 정원수에 묶여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어려우므로 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또 현재 교수평가는 논문으로 이루어지므로 기존 교수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 기업에서 실무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득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에서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급기술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외국 기업을 유치해 한국을 그들의 소프트웨어 개발기지로 만드는 일이다. 취직을 책임지고 학생을 뽑는 학교는 사관학교밖에 없다. 학생 처지에서는 처음부터 직장을 얻어 시작할 뿐 아니라 학비도 대여받을 수 있으니 좋은 환경이다.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 새로운 학위를 만들기 위해 법률을 새로 제정해야 하고 국채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다. 10여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산업의 진흥을 외쳐왔지만 아직까지 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늦기는 했어도 아직 이 길만이 고학력 실업자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전 삼보컴퓨터 회장 ytlee1@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