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디스플레이 장비 산업 이젠 바뀌자

[ET단상]디스플레이 장비 산업 이젠 바뀌자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대화면 TV와 모니터 등의 세트업종은 디스플레이의 공급 과잉에 의한 가격 인하가 소비자의 구매 확대로 이어져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에 디스플레이 패널은 공급 과잉에 따른 단가인하로 비록 매출은 확대되지만 수익성은 악화되는 형국이다.

 가장 어려운 쪽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장비와 부품소재 산업계다. 부품소재를 비롯한 장비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국산화의 명분 아래 선진 기술을 무작정 카피만 하던 후진국형 개발체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시장이 확대돼도 기존 공급 제품 외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건 엄두를 못내고 있고 선진업체들의 독무대를 구경만 하는 처지다.

 일본 장비업체들은 고부가가치의 고난도 기술력이 필요한 진공장비와 제조장비 등을 생산해 한국 시장과 해외 시장을 누비는 반면에 한국의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들은 이들 선진업체가 포기한 저부가가치 세정장비 등의 시장에 집중해 왔다. 그렇다 보니 날로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내 패널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와 중국 패널업체 성장에 일조하는 데 위안을 삼고 있다.

 최근의 시장 상황은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들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LCD업체들은 성장세가 둔화된 LCD 모니터 시장을 탈피, 급성장이 예상되는 대형 평판T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차세대 LCD 라인 투자에 치중, 공급 과잉을 불러왔다. 결국 일부 LCD 업체는 한 분기에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을 맞게 됐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속속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그나마 저가 장비라도 수출해 연명해왔던 많은 국내 장비업체는 점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젠 한국도 초일류 패널 업체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초일류 장비 업체를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 수입 대체 명목 아래 저가격·저부가가치의 카피 제품만 만들 것인가. 저가 제품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많이 생겨 고용이 창출된들 어차피 몇 년 후면 순식간에 사라져야 할 신세다. 또 장비 크기도 너무 커져 국산화하자고 조르기에도 어려운 처지에 도달했다.

 한국의 패널 업체가 일본 선발 업체를 추월할 당시에는 이러한 기업들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저가의 국산화 부품소재, 장비 공급이 산업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초석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탄탄한 기초가 없는 성장은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매출 1000억원이 넘어도 변변한 자체 장비 개발품 하나 제대로 없으며 국가 지원과 수요기업 기술 지원이 없으면 꿈쩍 않고 있다가 기술 이전해 달라고 소리치는 장비 업체들은 이제는 설자리가 없어졌으면 한다.

 국내 기업이 신개념 장비를 개발해도 일본 등의 선진 업체들이 생산하지 않았고 수요기업의 구매 실적이 없으면 외면하는 구매 관행도 국산 장비의 경쟁력을 갉아먹어온 잘못된 문화다. 국산 장비는 당연히 외제보다 싸야 한다는 대기업 구매 풍토, 스스로 토종 연구기업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해외 유명 연구소를 유치해 마치 한국이 세계적인 연구소를 키운 것처럼 치장하는 포장 문화들도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비록 투자가 지연돼 버티기 힘든 시기가 와도, 이들 장비 업체 중에는 고부가가치의 신장비를 개발해 생존하는 기업은 반드시 있다. 탄탄히 기초를 다진 기업들이다.

 가장 우려되는 사항은 카피를 통해 싸구려 장비를 공급하던 업체가 알량한 지원으로 연명하며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기업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차라리 지원을 말자. 살 수 있는 업체만이라도 좀 살도록. 시간이 별로 없다. 중국이 장비를 카피해 한국에 팔 날도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이충훈 모디스텍 사장 mdtyi@modiste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