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지원 요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해외무역 의존도가 70% 이상을 차지하던 상황에서 많은 외화 유출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간 사건이다. 결국 IMF 구제금융 한파는 무쇠보다 단단해 보였던 대기업을 하나둘씩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렸고, 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고 방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또 서민의 소비심리 위축과 투자자의 투자저하 현상은 국가를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1998년 출범한 국민 정부는 전국적으로 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벤처를 적극 육성해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들어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벤처육성 정책을 세우게 됐다. 이후 수많은 인재가 벤처세계로 발을 들이고, 일반인도 쌈짓돈을 꺼내 벤처투자 열풍에 참여했다.
9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벤처 업계는 그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거품은 빠지고 일명 ‘알짜배기’라 불리는 기업만이 남아 버티고 있다.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경쟁체계에서 혁신기술·경쟁·창조에서 버티지 못한 기업은 빈번한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라졌다. 벤처 붐으로 생성됐던 많은 기업이 기업의 본분인 수익성을 창출하지 못하고 퇴출당하게 되면서 이후 각종 언론에서는 ‘벤처-무너진 신화’라는 주제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많은 기업이 사라지면서 현재 벤처기업은 위험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실기업의 이미지를 얻는 위기의 순간이 도래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IT 벤처세계에서 실패는 흔한 일이며 성공을 위한 과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알짜배기 기업도 수십 번, 수백 번 이상의 실패를 이겨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실패는 기업의 도산’이라는 공식은 IT 벤처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벤처인, 투자자 모두 이제는 알아야 한다.
나는 그동안의 벤처 역사를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으로서 벤처를 꿈꾸는 이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
‘실패에 관대해지는 자세를 가져라.’ 아주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실패에 인색한 사회의 인식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포기해 버리는 습관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현실을 꼬집어야 한다. 실패 없는 성공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에 얽매여 과업을 잊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이제는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능동적인 자세로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 ‘멋진 실패’의 예로서 바로 미국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애플사의 창업자이면서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한 ‘아이팟’의 창조자 스티브 잡스를 들어본다. 그는 차고에서 동료 워즈니악과 ‘애플Ⅰ’을 개발,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며 회사를 설립하고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춘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애플Ⅱ’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는 전문경영인 간 견해차이로 자신이 창업한 애플사에서 쫓겨나는 인생 최대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실패를 계기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인수해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등의 3D 애니메이션 제작에 성공하고 애플사의 경영 컨설턴트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후 아이팟 시리즈로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사를 그는 단 1년 만에 4억달러 가까운 흑자를 만들어내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에서 해고될 당시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작했고, 그 일이 지금껏 그에게 일어난 사건 중 최고였다고 말한다. 그가 실패에 관대했기 때문에 인생 최고의 창조적 기회를 얻고 성공신화를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포기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와 경영능력을 키우는 것이 현재 우리 벤처기업인의 과업이다.
이제 실패에 대한 관대함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벤처 어게인(Venture Again)’을 다시 이루어야 할 때다.
◆이인우 오늘과내일 사장 iwlee@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