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여권 시범사업에 대한 국내 바이오 업체들의 대응이 시큰둥한 모양이다. 사업 규모가 극히 작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전자여권이 미래 유망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 관련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어주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비록 지금은 사업 규모가 작더라도 국내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국내 업체의 대응이 늦을수록 세계 시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장마저 외국 기업들에 고스란히 넘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자여권에는 국민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담긴다. 만일 우리가 전자여권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당연히 우리 국민의 전자여권마저 외국 기업에 의해 만들어짐에 따라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전자여권에는 안면 정보와 홍채·지문 등 바이오 정보를 담은 IC칩을 부착하게 된다. 바이오인식 데이터와 기술 표준 확보 등 생체인식기술이 관건이다. 현재 전자여권은 미국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올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내년에 본격적으로 전자여권 전환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9·11테러사태 후 전자여권을 도입하기 위해 바이오인식 핵심기술 표준과 기구를 만들어 사실상 미국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또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미국 바이오기업을 중심으로 전자여권 토털 솔루션 거대 기업까지 등장했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전자여권 시장은 물론이고 전자여권의 핵심인 바이오인식 시장마저 우리 기업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질 게 분명하다. 단순히 전자여권 시범사업의 규모가 작다고 국내 기업들이 손놓을 일이 아니다.
더구나 국내 바이오기술은 세계 일류 수준이다. 국내 업체들은 중동과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 지문 및 혈관 인식 모듈은 물론이고 출입통제기 등 완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인식기술 2건이 ISO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기술이 있으면서도 전자여권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높은 기술 수준을 바탕으로 전자여권사업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물론 전체 전자여권 시범사업 규모가 10억원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바이오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기업들의 하소연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 보면 큰 것을 놓치는 법이다. 국내 기업이 전자여권에 적극 대응한다면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비난을 받아온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부정적인 이미지 또한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정보가 담긴 전자여권을 우리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에 맡기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자여권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를 외국 기업으로부터 지켜내는 파수꾼이라는 이미지 제고와 함께 앞으로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바이오 시장을 주도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