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니의 자살이 인터넷 강국에 또 한번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악성 댓글, 즉 악플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고 그로 인해 자살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악플러는 우리만의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키보드 워리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으니 말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인터넷 전사’라고나 할까.
키보드 워리어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초·중·고생이나 무직자, 다른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들 중에 키보드 워리어가 많다는 것이다. 이 키보드 워리어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오히려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소심한 편이라고 한다. 그 유명했던 개똥녀 사건에서도 어엿한 직장인·교수들이 악플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이 있다. 이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목받는 것이라면 무조건 반감을 보인다고 한다. 청소년이라면 이유없는 반항이라고 봐줄 만도 하다. 한데 성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신에 대한 미움의 또다른 표현인지 사회에 대한 불만인지….
키보드 워리어는 인터넷 세상의 하이드다. 밝은 세상에서 활약하는 지킬 박사 뒤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자식 하이드. 지킬 박사가 하이드를 떼어낼 수 없었듯이, 인터넷 세상에서 키보드 워리어를 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일까. 문득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죽음에 처한 양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미모의 여수사관 클라리스. 매일 밤 죽어가는 양들의 울음소리에 시달리는 그녀는 마침내 연쇄살인마의 마수에 걸린 죄없는 어린 양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과거의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또다른 오늘의 희생양을 구하기 위해. 이런 그녀를 두고 희대의 살인마이자 최고의 범죄심리학자 한니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를 구해내면 더이상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나? 양들이 침묵하게 되면 내게 말해줘.’
양들은 결코 침묵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 명의 하이드를 잡는다고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도, 그렇다고 이 세상의 하이드가 모두 없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지킬은 하이드를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키보드 워리어는 어느 누구의 죽음으로도 추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비아냥거리며 더욱 활개를 칠 뿐이다. 한니발의 단정처럼 양들의 침묵은 정말 불가능한 꿈일까. 우리는 모두 밤마다 양들의 울음소리에 괴로워하는 클라리스가 돼야만 할까.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