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시장 정의 해치는 정체 모를 숫자들

 요금 인하나 수수료 인하 때 벌어지는 논쟁에는 간혹 정체 모를 숫자가 등장하며 혼란스럽게 한다. 정치권의 공세로 시작된 이번 신용카드 수수료 논쟁도 똑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자는 30일 ‘카드 수수료율 진실게임’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정치권과 신용카드사 간에 벌어지고 있는 수수료 인하 논쟁을 다룬 것이다. 반응이 뜨거웠다.

 하지만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수수료가 높다는 근거로 제시된 해외 사례. 호주는 카드 수수료가 1% 밑으로까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카드결제액을 현금결제액보다 비싸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할증금 방식(surcharge)을 채택하고 있다. 즉 현금으로 계산할 땐 100원, 카드로 계산할 때는 102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수료율을 계산하는 데도 정체모를 숫자가 등장한다. 여신협회는 전체 수수료 수익을 카드 이용액으로 나눠 2.4%를 주장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 측은 직접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수수료율이 3.5∼4.5%라고 반박했다. 노 의원 측은 이를 근거로 수수료율이 외국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가맹점별로 수수료율 차별을 두고 있다는 근거가 될지는 몰라도 수수료율 평균액이 높다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수수료 수준을 비교할 때는 여신협회의 2.4%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정체 모를 숫자는 혼란스러운 주장과 맞물려 오용 또는 악용되곤 한다. 노 의원은 가맹점별 수수료의 차등을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전체 수수료율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동시에 하며 각 주장의 근거를 뒤섞어 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정작 국내 수수료율이 원가에 비해 비싸다는 것, 외국에 비해 비싸다는 것조차 명쾌하게 증명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 같은 근거 없는 숫자들이 정치적 호소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숫자야 잘못됐든 말든 결국 돈을 많이 번 카드사들은 수수료율을 낮춰서라도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호소로 대중은 받아들인다. 숫자를 내세운 덕에 막무가내식 인하 요구라는 지적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정체 모를 숫자들에 상처를 입는 것은 시장의 질서다.

김용석기자·솔루션팀@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