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파동(波動)이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이 파동의 진앙(震央)에는 TV·인터넷·휴대전화·라디오·신문·우편 등 서로 다른 미디어를 위해 개발된 다양한 첨단 기술 간의 교류와 공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다룰 수 없는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융합기술이 향후 관련산업 및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지금껏 융합에 관한 논의는 그리 생산적이지 못했으며, 제도적 뒷받침 또한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융합 문제 해결을 기구의 개편과 결부하여 논의해 온 탓이다. 즉 융합 문제 해결을 부처 및 기관의 통합을 전제로 풀어가다 보니 부서 및 기관의 존폐라는 예민한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 각자에게 유리한 논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폐해가 증폭돼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논의는 무성한데 결론이 없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우선 국가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육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또 사업자는 큰 규제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이는 산업 전반에 비효율성을 가져온다. 결국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에 피해를 가져온다.
특히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는 IT 분야를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국가적인 손실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DMB 등 구체적 서비스가 도입된 지 이미 오래며, 더 진전된 형태의 융합 서비스인 IPTV도 이미 서비스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어떠한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책적 고려와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지난 2006년 12월 6일 국무조정실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를 위한 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정부 입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방송의 독립성이나 방송·통신융합의 정책수행을 위한 부처 간의 기능조정 없이 단순히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라는 두 기관을 합치는 것에 그쳤다는 데 있다. IT산업 진흥, 콘텐츠 진흥, 공정거래정책 등 관계부처 간에 선행돼야 할 기능조정 내용을 담지 않은 채 추후 논의로 넘겨버린 것이다. 이는 통합기구 설치와 함께 부처 간 중복업무에 대한 기능조정을 위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결과적으로 부처 간 소관업무에 대한 쟁점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통합기구 설치 이후에도 관계부처 간에 소관업무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방송과 통신 분야는 사업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갈등 발생이 필연적이기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또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의 권익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술적·사업적 차원은 물론이고 이용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충분한 검토와 대책 마련을 통하여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우려되는 정보의 불균형을 막아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켜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21세기의 먹거리를 위한 중추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책 제시가 절실하다.
정부는 방송·통신융합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깊은 인식 아래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 100년 앞을 내다보는 정책은 아마추어리즘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인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riminbae@assembl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