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를 하나 주면서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제우스가 준 상자가 생각났다. 그녀는 제우스의 경고가 떠올랐으나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서 상자를 열어 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상자 속에서는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악이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아 희망은 빠져 나가지 못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연 이후로 인간은 이전에 겪지 않았던 온갖 고통을 겪게 됐으나 희망만은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
이처럼 ‘판도라의 상자’는 열어서는 안 되는, 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재앙의 문을 열고야 만 경우를 비유한 신화다. 현재 문화관광부가 추진 중인 아이템(게임머니) 현금거래 금지 역시 이런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템 현금거래는 잘못 건드릴 경우 그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게임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진흥법에는 ‘누구든지 게임의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게임머니·경품 및 이와 유사한 것을 말한다)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충실히 해석하면 최소한 개인과 개인 간의 게임아이템과 게임머니 거래는 위법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게임산업진흥법 내의 규정은 개인 간의 아이템 거래를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는 아직 대처할 능력이나 준비가 안 된 게임사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부담 중 하나는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 제기다.
개인 사용자 사이의 아이템 거래 허용은 사용자의 아이템 소유권, 아니 최소한의 점유권 인식을 확고하게 할 것이다. 내가 2004년 게임 사용자의 의식을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80% 이상이 게임 아이템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었고, 게임사와 공동소유라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90%를 넘었다. 게임산업진흥법 안에서 사용자 간의 거래를 인정하는 것은 이런 사용자의 소유권에 대한 의식을 확고히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사용자와 게임사의 아이템 소유권 분쟁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또 개인 간 거래 허용은 아이템의 재물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향후 사용자의 소유권이 부분적으로나마 인정되고 아이템 거래에 세금 부과가 시작된다면(미국에서는 이미 검토가 시작됐다) 게임사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약관상으로는 아이템이 자사 소유라고 규정해 놓았지만 현실적으로 사용자의 아이템 소유권을 묵인하고 소실된 아이템은 보상해 줘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게임사의 재무제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임 아이템은 지금까지 자산도, 부채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용자의 소유권이나 점유권이 인정된다면 게임 아이템은 재무제표상에 부채로 기입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내게 이렇게 된다면 ‘게임아이템을 부채로 잡는 것이 타당한 것 아닌가’를 질문해 온 바 있다.
게임사가 사용자에게 판매하는 유료 아이템 역시 일정액은 부채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일 아이템이 부채로 계상된다면 한국의 게임사 중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게임 서버를 닫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논리적으로 따져 만일 단 한 명의 사용자라도 게임 서버에 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 사용자가 보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게임사는 서버를 닫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일방적인 게임사의 판단에 따라 게임 서버를 내릴 수 있었지만 향후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의 세컨드라이프와 같이 사용자의 아이템 소유권을 인정하는 게임이 한국에도 출현할 것이고, 소니컴퓨터엔테테인먼트(SCE)의 스테이션 익스체인지처럼 게임사가 직접 사용자 간의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모델도 출현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시기다. 현재의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은 게임사의 주도에 따라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닌 정부가 일거에 뚜껑을 열어 버린 데서 비롯됐다. 과연 이 상자에 게임산업의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인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