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만큼이나 사연도 많다.’
1993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설립 후 윈도 3.1, 워크스테이션 3.5 한글 지원 등 윈도 기반 OS 한글화를 주도했다. MS의 한글화 작업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프린터 등 PC주변기기 한글화는 물론이고 SW개발이 본격 시작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견과 한글SW 시장 성장을 막았고, 결국 주요 프로그램들이 MS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이런 상반된 시각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산업적인 측면에서 다국적 IT기업들은 ‘IT불모지’ 한국을 IT코리아로 만든 ‘개척자’이다. 정보기술(IT) 종속 심화, 시장 교란, 탈세 논란 등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40년간 이들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다.
◇ IT코리아 단초 제공=IT를 바탕으로 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은 기업의 경영혁신의 첫 출발점이다. 대표적 사례는 94년 삼성전자 전사자원관리시스템(ERP) 구축이다. 매출 확대에 따라 회사 관리 필요성을 절감한 삼성전자는 글로벌 IT기업의 사례를 참조, SAP ERP시스템을 도입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ERP 도입은 90년대 이후 경쟁 업체에 비해 한발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던 필요충분 조건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신재철 전 한국IBM 사장은 “국내 대표 IT기업이 없었던 상황에서 다국적 IT기업은 기술·조직 지원 등 많은 일을 했다”고 평했다.
80년대 이후 한국 기업이 외형 위주에서 수익성 중심의 ‘책임 경영제’를 도입한 것도 다국적 IT기업의 영향이다. 90년대 들어 LG전자는 기존 기능식 조직 구조를 사업부제로 전환, 세계 수위를 다투는 가전 업체로 부상했다. 또,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위험 관리를 조직 전체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리스크 통합 관리’ 능력도 외국 기업이 남긴 자산이다.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퍼트린 △자금조달체제의 개방 △ 능력위주 인사관리 △슬림화된 조직구조 △신속한 의사결정 등 글로벌 스탠더드는 향후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 대열에 뛰어들 수 있는 단초로 작용했다.
◇IT인력 양성에도 한 몫=IT인력 양성은 다국적 기업의 유산을 거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요소. 이들이 배출한 인력만 해도 수만명을 넘는다. 70년대 초반까지 일본이 남기고 간 전력 시설을 복구할 전기 기술자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다국적 기업은 IT교육 인프라를 제공했다.
물론 ‘영업을 위한 필요 인력 양성’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한국 IT 1세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후지쯔는 국내 지사 설립 이후 신입 사원에게 포트란, 코볼 등 랭귀지 중심의 전문 교육과 일본어 수업을 병행했고, 한국IBM도 은행 전산 담당자 교육에 집중, 80년대 은행전산화 초석을 마련했다. 84년 설립된 삼성HP는 신입 사원을 대거 충원, IT스페셜리스트로 변모시켰다.
다국적 기업의 피를 받은 IT전문가는 97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700억달러가 넘는 부채와 부실에 허덕이던 정부와 대기업은 IMF 외환위기 이후 다국적 IT기업과 손잡고 실직자 대상 IT 교육과정을 대거 개설했다. 오라클, MS 인증 자격증도 이후 국내에 본격 도입됐다. 이는 훗날 기술 종속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지만, 이를 기점으로 IT개발자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음은 부정할 수 없다.
유재성 한국MS 사장은 “IMF 당시 MS는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IT교육센터를 운영했다”며 “이들은 2000년 이후 닷컴 열풍의 중심에 섰다”고 밝혔다.
◇기술종속 심화 이견도=부정적 의견도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특정 기업의 제품이나 기술에 종속돼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견해다. 또 IT 국산화 노력이 번번이 좌절된 원인을 다국적 기업에 돌리기도 한다. 바다DB, 주전산기 등 IT인프라 국산화 연구가 유명무실하게 끝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국내 지사장은 “자금력이 풍부한 다국적 기업의 경우 현지 진출 시 매출액의 10% 이상을 마케팅에 쏟아붓기도 한다”며 “시장 초토화라는 결과로 이어진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