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면 결코 짧지 않다. 사람으로 치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불혹’이다. 물론 다국적 IT기업 전체 역사를 40년으로 보긴 이르다. 90년대 중반 이후 몰려든 많은 IT기업을 고려할 때 평균 나이 17년 정도로 봐야 할까. 스무 살이 채 안 된 국내 다국적 IT기업의 역사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다.
탐사기획팀이 한국IBM 진출 40년을 계기로 ‘다국적 IT기업 현주소’를 조명하고자 시작한 기획에서 부닥친 첫 고민은 주체 스스로 한계에 봉착해 힘겨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 기운보다는 의기소침함의 기운이 더 크게 다가왔고, 한마디로 ‘아! 옛날이여’를 외치는 분위기다.
그러나 주눅들 필요 없다. 조건은 다국적 IT기업 국내 지사지만 국내 IT산업 발전의 한 축을 지고 온 분명한 발자취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승삼 전 한국MS 사장 말처럼 “한글날을 빛낸 공로자를 꼽을 때 컴퓨팅 분야에서 한글화를 주도한 당시 젊은이들을 기억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다. IT산업이 그리고 다국적 IT기업 한국 지사와 거기서 뿌리를 내린 많은 종사자의 공은 자동차·철강 등 우리나라 산업 경제를 일궈온 산업역군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70·80년대 젊은 IT일꾼들도 다른 산업 종사자들처럼 중장년이 돼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갈 때다. 무엇보다 시장 여건이 바뀌었다. 국내에 선진 기술을 소개하고 이전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던 초기 어려움과 지금의 어려움은 다른 차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 다국적 IT기업의 역할론’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안경수 후지쯔 본사 경영집행역은 이를 가장 정확히 짚는다. “지사가(지사장이) 본사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본사의 강점을 한국에서 어떻게 발휘할 것이냐에 대한 안목을 갖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힘들어도 ‘IT코리아 맨’의 자존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IT코리아가 흔들리지 않게 뿌리를 깊게 내리는 데 일조하는 다국적 IT기업 지사 역할의 출발이기도 하다.
IT코리아의 한 몫을 충분히 해냈고, 또 이어갈 다국적 IT기업 종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신혜선기자·온라인/탐사기획팀@전자신문, shin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