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휴대단말기 업계는 지금 내비게이션 열풍이다. 아니 광풍이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 규모는 150만대가량. 이는 전체 등록차량 대비 9.5%에 이르는 수준이다. 돌아다니는 차량 10대 중 1대는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장착률이 불과 2년 후면 전체 차량의 절반 가까이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디지털 휴대단말기의 대명사인 휴대폰을 비롯해 MP3플레이어·PMP·디지털카메라·UMPC 등 현존하는 그 어떤 제품도 이 같은 성장 잠재력을 보이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자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팔겠다는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기존 MP3플레이어나 PMP 등 유사세트 제조업체는 ‘컨버전스’라는 이름으로, 솔루션 등 소프트웨어(SW) 개발업체들 역시 ‘사업 다각화’라는 명분하에 너도나도 내비게이션을 내놓겠단다. 여기에 삼성·LG전자 등 대기업까지 가세하는 판이다.
시장이 확대되고 관련 산업이 커지면 해당 업체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기도 전에 난립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다. 이는 결국 관련 시장의 발전을 좀먹는 악순환의 단초가 된다.
조짐이 안 좋다. 몇몇 군소업체는 한두 모델을 내놓고 단종, 일반 소비자가 ‘내비게이션’이라는 제품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고 있다. 70여개 업체가 아옹다옹 몰려있다 보니 내비게이션 시장의 헤게모니는 유통업체로 넘어간 지 오래다. 제품 기획 단계서부터 유통상이 개입, 판권 자체가 제조업체에는 없는 모델도 많다. 이쯤 되면 장기적인 연구개발이나 해외 시장 개척은 ‘배부른 소리’가 된다.
수출 역시 해당 국가의 맵이나 관련 SW의 탑재 없이 이른바 ‘깡통(단말기)’만 내다 팔고 있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다. 국내 제1의 내비게이션 업체인 팅크웨어도 최근 180억원 상당의 독일 수출건을 해지했다. 이는 이 업체의 작년 전체 수출액과 맞먹는 액수다.
지금 내비게이션 시장은 흡사 수년 전 MP3플레이어 시장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이미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류경동기자·퍼스널팀@전자신문,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