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산업의 변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미래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산업의 컨버전스는 과연 한 특정 분야의 기술 경쟁력에 국한돼 있는 대부분의 혁신형 중소기업에도 기회일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기업 경영을 위한 자원이 사람·시간·자본이라 볼 때 혁신형 중소기업은 이 모든 자원 확보가 유연하지 못하다. 즉 인력 시장에서 적시에 인재 확보가 쉽지 않고, 신규 비즈니스 모델이나 신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하며, 자본 또한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혁신형 중소기업은 한 분야의 핵심 역량이 있다 하더라도 미래 시장을 위한 신제품 개발과 신규 비즈니스에 대한 도전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위험도를 낮추고자 대기업의 용역 개발이나 이들이 수주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건비 정도의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틀의 순환이 반복돼서는 절대적으로 혁신형 중소기업의 성장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국방 선진화에 민간 IT의 도입, 건설교통 분야 선진화에 따른 IT의 접목 등은 신규 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정부 조달 시장은 워낙 규모가 큰데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안정성을 위해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조달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에서 혁신형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지만 수익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차지하는 형태로 이어진다. 정부 조달 시장에서조차 이러한 상황이라면 기술기반 중소기업의 성장 발전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간신히 유지 관리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우량 중견기업으로의 도약은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같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첫째, 대기업·대학·정부출연연구소에서 수행하고 있는 각 정부 부처의 R&D 프로젝트에서 중소기업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분리해 기술기반 중소기업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가 시장이 되는 국방IT·u시티·전자정부 등의 사업 추진 시 중소기업 분야를 분리해 선정하거나, 중소기업 일정참여율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 R&D 예산 지원으로 개발된 성공적인 기술과 제품은 다시 대기업으로 이전되고 있으나, 중소기업이 담당할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은 그들이 사업화할 수 있도록 토대 마련을 위한 정책적 배려와 함께 우선권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각 정부 부처의 R&D 프로젝트가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고, 대학 및 연구소에서 개발된 우수 결과물을 다시 대기업에서 사업화하고, 정부 조달 시장의 대규모 프로젝트도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되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더 약화할 수밖에 없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더 심화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1등이 99%의 시장을 지배하는 미래 산업 구조에서 국가 대표 선수로서의 몇 개 큰 기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나라의 건실한 산업 구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1만5000개 이상의 성장 잠재력을 갖춘 기술 기반 중소기업들이 있다. 이들이 자기 핵심 분야만 잘하면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며,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실천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미숙 헤리트 대표 mshan@heri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