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단지 도구처럼 보인다. 기존 홈페이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커뮤니티의 게시판 등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얼핏 본 후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블로거로서 또는 독자로서 블로그를 제대로 활용해보면 그 매력에 흠뻑 빠진다. 왜냐하면 블로그의 글에서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지고 기존의 매체가 전달하지 못한 신선한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CMS(Content Management System)이고 트랙백·RSS 등 몇 가지 독특한 장치를 갖췄을 뿐이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아주 간편한 CMS라는 특징은 네티즌으로 하여금 손쉽게 글을 작성하고 배치케 한다. 그 어떤 도구보다도 강력한 글 작성 도구고 편집 도구다.
블로그는 관계적 관점에서 볼 때 새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강력하면서도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든다. 과거 커뮤니티가 하나의 사이트 또는 카페에 회원 형태로 가입해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는 새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다.
실제로 블로거와 독자들 그리고 블로거들 사이에는 기존 커뮤니티 이상의 끈끈한 유대감이 존재하고 서로 존중한다. 회원으로 가입한 게 아니지만 강한 공동체 마인드가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일반 대중에게 더 확산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관계의 가치, 서로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블로고스피어의 중요한 덕목으로 남을 것이다.
미디어적 관점에서 볼 때 블로그는 특히 의미가 있다. 블로그를 이른바 ‘1인 미디어’라고 한다. 하지만 적절한 말은 아니다. 1인이 운영하는 것이 아닌 팀 블로그와 같은 공동 운영도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미디어의 본질은 일반적인 정보 발신이 아니라 독자와 얼마나 많은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지에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선진국을 보면 PR2.0이라는 개념도 나온다(2.0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쨌든 과거의 메커니즘과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은가?). 블로그를 통해 기업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표현해 지지를 받는 사례도 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과 비교해 볼 때 국내의 블로그 현황은 단지 포털 중심의 양적인 블로그 개수만 많을 뿐 실질적인 수준은 많이 뒤지는 게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기업 공식 블로그, CEO 블로그, 제품 마케팅 블로그, 정치인 블로그, 연예인 블로그, 블로그 네트워크 등 블로그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블로그를 만나기 어렵다.
국내에도 블로그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눈에 띄는 파워 블로거들도 등장한다. 다양한 계층과 직종에서 블로그가 만들어진다. 메타 블로그를 통해 여론도 형성하며 여기에서 이슈화한 내용이 기존 미디어를 통해 기사화되고 있다. 기업 및 제품에 대한 평판은 검색 엔진이나 포털에 노출돼 기업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듯 블로그의 파워가 증대됨에 따라 블로그가 입소문 마케팅의 핵심 기법으로 부상했다. 네이버·다음·싸이월드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블로거를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아직까지 국내 블로고스피어는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그럴까. 아니다. 해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시사적인 이슈가 발생하면 블로고스피어는 급속히 팽창한다. 우리나라는 대선을 기점으로 블로그의 양적·질적인 수준이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현재 블로그의 모습으로 미래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미래에는 더욱 진화한 블로그가 존재할 것이다. 블로그가 모든 것을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블로그가 주류 문화의 일정 퍼센트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PR·미디어·마케팅·엔터프라이즈의 전 영역에 큰 충격이 될 것이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눈을 감는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혁신도 발생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결론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류한석 소프트뱅크미디어랩 소장 bobby@softban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