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안녕하세요? 기술보증기금입니다.” “네!” 뚜-뚜--
채무자와 어렵사리 전화 통화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경영상태 악화로 폐업하거나 부도가 나 기금에서 대위변제한 기업의 대표를 만나기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다. 통화도 어렵지만 상대편에서 일방적으로 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채권회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기업도 하나의 생명체다. 창업 단계를 거쳐 탄생해 자라나는 과정에서 풍파를 겪기도 하고, 찬란한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업도 있다. 영업점에서 채권관리 업무를 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점이 많다. ‘왜 망하게 됐을까?’ ‘창업 때 이렇게 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 잘못돼 이런 결과가 초래됐을까?’ 등 상념이 꼬리를 문다. 특히 전자부품 기업이 많은 구미지역은 많은 업체가 부도가 났다. 내가 담당하는 기업들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경쟁에서 밀려나 부실화된 경우가 많았다.
브라운관용 편향코일을 생산하던 A사와 B사, 모두 10년 이상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 왔으나 브라운관에서 LCD로 바뀌는 과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모두 문을 닫게 됐다. 그래도 A사는 LCD용 전원공급장치를 개발하며 변화를 꾀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반면에 C사는 96년 당시로는 초기 단계인 LCD용 유리패널 개발에 투자해 현재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다른 기업보다 한발 앞서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한 게 비결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업은 모두 사양산업이라고 발을 떼는 브라운관에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기술개발에 힘써 슬림브라운관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사례도 있다.
기업은 생명체다.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지배하는 인류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오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은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벤처·이노비즈기업 등 기술혁신형 기업에 대한 보증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기보가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술혁신형 기업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강일호 <기술보증기금 차장> kih@kib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