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책가방

요즘 아이들 중 ‘괴나리봇짐’이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밤잠을 설치며 미리 챙겨놓은 책과, 어머니가 챙겨주신 도시락을 보자기에 돌돌 말아 어깨나 허리에 괴나리봇짐처럼 멘 것이 바로 책가방의 시초였다. 생활수준이 개선되면서 화려한 디자인과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춘 책가방이 등장하고, 이제 아이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최신 책가방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풍요의 시대’가 됐다.

 하지만 나의 눈에 여전히 거슬리는 것은 여전히 무거워만 보이는 책가방이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의 키가 덜 자랄 것을 염려해, 손잡이를 길게 빼서 끌고 다닐 수 있는 ‘롤링 백팩’을 사주기도 한다. 하지만 30,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책가방은 무겁기만 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IT산업 종사자들은 자라나는 세대의 생활 양식과 소비 형태를 염두해 두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나 또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때 1325세대 즉 포스트 디지털 세대를 고려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또 바라는가. 아이들은 선이 없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문자와 동영상을 주고받는다. 현실을 대체해도 될 만큼 풍성한 멀티미디어 스토리에 감정이입돼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다. 정보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설령 화면이 빽빽한 텍스트로 가득 차 있어도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지금 이 순간’ 궁금한 정보를 쉽게 재생할 수 있다.

 서운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 어떠한 혁명적 기술도 교육자의 요구와 설계에 의해 탄생한 적이 없었다.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처음 대면한 교육자는 생소하고 당황스럽다. e러닝이 대표적이다. 멀티미디어 효과로 인한 지각 경험의 확대, 자기조절학습 등 학습자 중심주의의 도래, 효율적인 콘텐츠의 생산·유통 등 교육환경의 전반적인 변화를 예고했던 e러닝도 교육적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논의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스마트폰·PMP·UMPC 등 새로운 모바일 단말기가 쏟아지고, 무선 환경에서 실시간 대용량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공개된다. 이제는 사용자가 생산한 콘텐츠가 신속하게 유통되는 등 ‘유비쿼터스’로 대변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나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밋빛 시나리오로 사람들을 현혹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만 미래 석학들은 한국을 ‘세계적인 IT 슈퍼스타’ ‘제3의 물결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없는 나라’ ‘IT 글로벌 테스트베드’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이후 IT산업을 국가의 중점 사업으로 추진한 결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디지털기회지수(DOI) 평가에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지난 1월에는 바레인 국왕이 유네스코에 출연해 창설된 ‘제1회 유네스코-바레인 국왕 교육정보화상 대상’을 수상, 교육정보화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처럼 뛰어난 IT 리더십을 확보한 우리나라가 미래교육환경을 위해 당장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미래의 아이들에게 ‘책가방 없는 학교’를 선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내 손안의 단말기’로 생생한 학습 메시지를 공유하고, 풍부한 디지털 체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선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기저에는, 마크 와이저가 말했던 것처럼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인간을 위한 것이야 한다’는 휴머니즘 옹호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 일상 생활과 교육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데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어떻게 적용, 확대할 것인지 철저한 고민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단순한 고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실상’으로서의 고민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꿈과 희망을 갖고 책가방 없는 학교, 새로운 미래 학습 환경을 이뤄 나가야 한다.

◆김영순 크레듀 사장 mryoung@cred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