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융합과 결합

 최근 오지철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과 중국음식을 바탕으로 퓨전요리를 내놓는 식당에서 마주앉았다. 그는 갑자기 “어떤 이가 처음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영어 단어 중 ‘컨버전스(convergence)’를 ‘융합’으로 풀어놨는데, 정말 무책임하고 바보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음식을 가리키며) 우리가 이것을 왜 퓨전요리로 부릅니까. 요리하는 과정에서 화학적으로 섞였기 때문이잖아요. 융합은 컨버전스가 아니라 퓨전입니다. 컨버전스는 한 점으로 모이는 것, ‘수렴’하는 것입니다. (두 주먹을 나란히 모으며) 그냥 ‘결합’할 뿐입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컨버전스의 어근인 컨(con)은 투게더(together), 즉 ‘함께’를 뜻하는데, 어느 바보가 ‘융합’이라고 잘못 번역한 탓에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차분하고 냉철한 법률가(법학 박사)이자 고위공무원(전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정평이 난 오 회장의 난데없는 어근 설명에 솔깃할 이들이 많겠다. 물론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붉힐 이도 있겠고. 오 회장이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과 내용은 이렇다.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지난 5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도출한 ‘IPTV 도입을 위한 정책방안’의 서비스 성격에 대한 정의를 옹호한 것이다. IPTV는 ‘방송이 주(主)고, 통신이 부수적’이라는 얘기. 따라서 현행 방송법을 일부 바꿔 IPTV를 플랫폼(방송사업자) 규제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곧 “IPTV가 방송·통신 ‘융합’이 아니라 ‘결합’ 서비스기 때문”이라는 오 회장의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시점’(時點)이다. 오지철 회장에게도 재차 확인했는데 “지금의 IPTV 서비스는 방송 위주여서 방송법을 통해 규제해야 하지만 방송·통신이 완전히 융합하는 시점에는 제3의 규제체계가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방송과 통신이 완전히 섞이는, 즉 융합해가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에도 공감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결합과 융합이 헷갈리기 시작했을까. 그것도 시점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다.

이은용차장·정책팀@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