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소줏잔을 기울이던 중소기업 사장 K씨는 억누르던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고단한 삶의 무게 만큼 그의 머리가 식탁위에 떨구어졌다. 짠한 마음에 위로의 말을 던졌지만 그 어떤 말도 그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했다. 그저 쓴 소주로 순간을 잃어버리는게 상책일지 모른다.
‘슈퍼 울트라 갑(甲)’으로 불리는 대기업의 그늘아래 숨쉬는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K씨가 운영하는 기업은 부품업체로 하청의 재하청을 받는 중소기업이다.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미리 앓아 눕고마는 신세이다. 환율이며, 유가 모두 좋을 때는 말이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 ‘악재’로 작용한다. 대기업이 원가절감을 외치면 그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슴이 콩알만해진다고 한다. 모든 압박이 K씨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종업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 사원의 연봉이 얼마라는 기사가 언론에 나올 때면 어깨부터 움츠려든다. 사장인 K씨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수근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K씨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한 명 두 명 빠진 종업원이 ‘손에 쥔 모래처럼’ 다 빠져 나갔다. 예전의 50% 인원으로 공장을 돌린다. 설비의 일부분이 가동 중지된지는 오래다. 그나마도 물량은 줄고, 매출과 이익은 더 떨어졌다.
K씨가 집에 돈을 들고 간 적은 아주 오래됐다. 급한 생활비는 카드로 쓰고 뒤에 갚는 패턴에 익숙하다. 생활비 잔고를 갖고 살림하는 것이 K씨 부인의 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될때까지는 무척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아니 요원할지 모른다고 했다.
K씨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트레이드 마크’다. 기름때로 얼룩진 작업복이 그의 생애중 가장 많이 입은 옷이다. 열심히 살아온 그의 인생은 지금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의 사업에 관한한…
K씨에겐 ‘대·중소 상생프로그램’은 먼나라 얘기다. 단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입장에 서서 사정을 이해해 주길 바랬지만 단 한번도 실현된 적은 없었다. 쓴 소줏잔이 ‘상생’이라는 공허한 말보다 그에게 훨씬 가깝고 친근하다.
이경우부장·퍼스널팀@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