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대법원 호적 관련 민원인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호소를 시작했다. 각종 증빙 서류를 팩스로 보내 주기도 했다. 주민등록과 실생활, 은행 서류 등의 정보와 호적상 정보가 달라 혼란을 일으킨다는 ‘호적 전산화’ 관련 기사를 쓴 후 자주 받는 전화 중 하나였지만 그 사연은 유별났다.
그는 형과 동생 사이인데도 호적상으로는 ‘유’씨, ‘류’씨로 성이 다르다고 운을 뗐다. 호적상 ‘유’씨지만 실제 류씨로 살아온 그의 호소는 이랬다. 지난 2002년 성씨에 두음법칙을 일괄 적용한 대법원의 호적 전산화로 하루아침에 ‘유’씨로 성명(姓名) 전환자가 된 그는 본적을 서울 금천구에서 고향인 서산으로 옮겼다.
지난해 대전지법에서 성씨에 두음법칙 일괄 적용한 호적예규가 위헌이라는 판결에 따라 대전지법 영향을 많이 받은 서산지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낸 동생들이 지난 1월 잇따라 ‘류’씨로 정정 판결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바라던 대로 됐다면 기자한테 전화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서산지원은 단 2개월 만에 같은 사안인데도 정반대 결과인 ‘불가’ 판정을 내렸다. 민원인을 보다 못해 딱하게 여긴 서산지원 호적 담당자는 “2월까지는 대전지법 판결문에 준하여 정정허가를 해줬는데 상급법원 및 회의에서 (문제 소지가 많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3월부터는 기각 판결이 나고 있다”면서 “기각되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달래더라는 것이다.
사태가 이토록 복잡하게 된 것은 애초 대법원이 국민 정서나 불편함을 고려하는 행정의 기본을 무시하고 한글화와 전산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원에 대한 그간의 대법원의 답변이 이를 잘 증명해 준다. “만일 ‘류’로 기재됐다면 그 원인을 불문하고 잘못 기재된 것이다” “주민등록표, 여권이나 사증, 기타 자격증의 다른 성명 기재는 우리 처의 소관이 아니어서 답변을 못드린다” 등등.
행정 IT 전문가는 내년에 새 호적법이 적용되기 전에 호적 관련 전산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행정정보 공유 불일치 문제까지 해결하는 폭넓은 자세까지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늘날 각종 민원과 오류는 더 나은 전자정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류현정기자·솔루션팀@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