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망(網)

‘네트워크’라는 용어를 잘 표현하는 우리말은 ‘망’이다. 현대 사회의 큰 변화를 주도하는 기술 혁명의 배후에는 바로 이 ‘망’의 인프라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망은 크게 정보망·통신망·방송망으로 나뉘는데 이들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현대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요구는 이러한 각각의 망이 점차 확대되고 그 역할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이들 셋을 서로 만나게 하고 있다. 사실 망이란 서로 만날수록 가치가 점증적으로 높아지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도 ‘네트워크 외부효과’라는 표현을 통해 점증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로 달랐던 이 세 종류의 망이 연계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법률과 규정의 통제를 받았던 망들이 서로 남의 역할을 하게 되고 이는 소비자에게는 방송과 통신, 인터넷이 결합된 서비스로 나타나므로 산업 간에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규제가 복잡해진다. 이에 대해 보통 통·방융합이라는 표제 하에서 기술·산업·사회·법률적으로 계속 준비돼 왔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망 사용 권한에 관한 것이다. 망은 특정 기업 또는 기업들에 의해서 구축되지만 다수의 여타 기업도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소비자는 다양한 서비스를 누리는 셈이다. 통신망에서의 별정 사업자가 좋은 예다. 그러나 망 사용이 다변화되면서 망을 보유한 기업은 스스로의 기회를 위해 유리하게 사용하고 망을 빌려 쓰는 여타 기업에는 그만큼 불리하게 기회를 공여할 수 있다. 또는 망 사용료를 더 내는 기업에 사용의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다. 이는 언뜻 생각하기에는 당연한 듯이 들리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문제다.

 망은 그 성격상 공공재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산꼭대기에 사는 한 가구를 위해 전화선을 놓지 않는다면 그 가족은 위급 상황에서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도 전화를 신청하면 회선을 놓게 돼 있다. 또는 모든 국민이 방송을 볼 권리가 있기에 공중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망의 성격은 도로와 유사하다. 도로망 또한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물리적 이동을 책임지고, 서로 연결돼야 그 가치가 배가된다. 우리 주변의 도로를 개별 기업이 건설해 아무 차나 통행할 수 없거나 통행료를 많이 내는 순서로 통과시킨다면 사회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망의 사용권리와 사용료의 문제는 국민 복지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세 종류의 망은 대부분 국고를 통해 건설되는 도로와 달리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에 의해 구축되기 때문에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거나 과도한 규제에 시달리게 되면 기업들은 더는 망을 확장하지 않을 것이므로 늘어나는 콘텐츠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새로운 서비스가 생겨나는 현상을 저해할 것이기에 통신·정보·방송 등의 관련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망의 이러한 양면성, 즉 공공재의 성격과 사유자산의 성격으로 인해 망의 사용권한과 사용료에 관한 문제를 기업 간의 문제로만 미룰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하고 이러한 역할의 범위에는 적어도 기업 간의 이해관계 조정, 독과점 기준 설정, 망 사용료 가격구조의 설정, 관련법 제정 등이 포함돼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이 시급한 이유는 망별로 형성된 가격구조가 위에서 언급한 망 통합, 서비스 통합으로 인해 점차 깨지고 있고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기본 골격을 만들지 않으면 망 소유기업과 여타 망 서비스 기업, 콘텐츠 서비스 기업, 소비자 사이에 충돌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개별 협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이를 차후에 수정해 나가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일본도 여기에 계속 준비해 왔고, 미국도 자본주의의 대표 주자답게 10년 이상을 망 사용가격 결정 메커니즘 등의 연구와 함께 망 소유 측과 사용자 측의 법제화 싸움도 계속해 왔다. 이미 늦은 감은 있으나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다. 관련 정부기관의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bckim@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