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의 병역비리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동계올림픽이나 여수박람회를 유치할 때 경쟁국가와 차별성을 강조하는 최고 무기로 활용됐던 우리의 IT산업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더욱 강화시켜 국가적인 성장동력으로 만들어가야 할 보충역 병역특례제도가 일부 업체의 잘못으로 내년부터 아예 없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빈대 몇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군에 가지 않는 대신 관공서에서 보조업무나 불법주차단속 등에 투입된 이른바 ‘공익근무요원’은 전국적으로 6만2000명에 이른다. 이들 중 미미한 장애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군복무를 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상당수는 산업현장에서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익근무지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얘기나 인터넷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근무지의 불법행위 고발 글을 보노라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공익요원이 교감 선생의 사적인 업무에 투입됐다는 보도가 나와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병역특례제도를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국가가 기술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이의 기술향상을 통해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나는 병역특례제도는 분명 국가적인 인력양성 차원에서 정리돼야 한다고 본다. 젊은 장정들이 군입대를 대신해 민간기업에 근무하고 보수를 받는 것은 분명 특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공계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병역특례제도를 마련하고 벤처기업으로 하여금 실력있는 고급인력을 기술개발에 활용토록 한 것은 벤처기업에 상당한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IT업계에 근무 중인 특례요원은 모두 2300명 정도다. 업계의 규모 면에서 보면 얼마되지 않는 수준이다. 많은 이공계 대학생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보기 위해 그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은 또 다른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다.
사실 제대로 된 IT기업에서는 높은 기술수준이 되지 않으면 직원으로 채용할 수가 없다. 이렇게 뽑힌 특례요원이 공익근무 기간 동안 기술분야에 투입돼 기술과 창의력을 신제품 개발에 쏟아붓고, 또 다른 현장기술을 경험함으로써 IT강국의 위상을 지켜가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특례제도는 ‘특혜’라기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력양성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IT기업의 병역특례제도는 1989년 상공부 시절에 입법화돼 1990년 시행된 제도다. 나는 당시 한승수 장관에게 이 제도를 제안했고 특례지정 1호 벤처기업이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부 IT업체의 불미스러운 병역특례 운영으로 인해 IT산업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이나 제도 자체를 없애겠다는 정부발표와 관련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 IT벤처업계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졌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많은 젊은이가 그래도 IT분야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고,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갖가지 부정이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래성장산업 분야에서 병역특례제도가 많은 젊은이의 학습의 이유가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IT분야의 보충역 병역특례제도는 오히려 배정이 확대돼 국가경쟁력을 키워 가는 원천이 되기를 기대한다. 군복무를 피해 볼 목적으로 전공 분야와 거리가 먼 인재에게 특례를 허용하는 것도 방지해야 하지만 전문인력을 뽑아 단순한 생산직에서 근무토록 하는 것은 국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례가 끝난 후에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분명 36개월의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한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왕 만들어진 제도를 없앨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익히고 전문인으로 경력관리가 돼 고용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단순 고용안정을 위한 인력지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기업에서 첨단기술을 익히게 하여 벤처기업을 창업하게 하든가, 해당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효율적인 정책이라 믿는다. 빈대만 박멸하고 ‘IT삼간’은 계속 늘려가야 한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hjcho@b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