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거대한 거미줄이 전국 스크린의 절반을 포획한 채 한국 영화의 목을 죄고 있다. ‘스파이더맨3’가 개봉 11일만에 300만 관객을 끌어 모으는 괴력으로 지금까지의 흥행 관련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면서 환호작약하는 한편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13만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사실상 종영에 들어갔다. 한국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반성할 시점이지만 반성과 분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6년 ‘왕의 남자’와 ‘괴물’ 등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두 편이나 있었는데도 한국영화의 투자 제작 부문은 1000억원 가까운 손실이 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제작비 규모 4422억원의 22%에 해당하는 수치다. 작년 한 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80%가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고, 해외 수출은 전년 대비 68.7%나 급감했다. 올 1분기 실적은 더욱 절망적이다. 작년 대비 한국영화 관객 수는 41.9%나 감소했고, 한국영화 점유율도 전년 동기 69.6%에 훨씬 못 미치는 48.9%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 한국영화 산업은 구조적 위기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은 늘 있었지만 대개 한두 가지 원인에서 위기가 거론돼 왔다. 하지만 지금은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초대형 악재 외에도 불법복제로 인한 부가판권 시장의 붕괴, 국내 극장 관객 성장 포화, 수출 급감, 급격한 제작비 상승 등 대여섯 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다.
거론된 위기 중에 만만한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붕괴된 부가판권 시장을 회복시키는 일은 시급하고 근본적인 과제다. 영화산업의 수입 구성은 비디오, DVD 등 부가판권 수입이 극장 수입보다 크거나 같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수입의 80%를 극장에 의존하는 지극히 왜곡된 구조다. 한때 4만개 가까이 되던 비디오 대여점은 이젠 겨우 4000여개만 남았고, 이마저도 빠르게 줄어들 정도로 부가판권 시장은 초토화됐다.
이런 현상은 불법복제 외에는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인터넷 발달로 콘텐츠 배급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옮겨지고 있었는데도 이에 따른 대응이 늦어 관련 업계는 붕괴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주요 소비층인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은 인터넷에 가장 밝은 네티즌이기도 하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된 인터넷 환경과 윤리의식이 결여된 온라인서비스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불법복제에 길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영화산업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한국영화의 불법복제 피해 규모는 분석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한 해 총 제작비가 4000억원 남짓한 한국영화 산업 규모로 봤을 때 이 액수는 산업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의 절대적인 금액이다.
디지털 환경에 맞는 부가판권 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업계는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비롯해 영화 관련 업체 100여개는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범영화인 협의회’를 결성,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캠페인과 악질적 OSP업체에 공동으로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
콘텐츠 유통이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하고,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면서 과거에 없던 수많은 윈도(영화를 보는 방식)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각 윈도의 정확한 이해와 그에 따른 판권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개별업체 단위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영화신탁관리 단체로 허가받아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공동으로 모색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해 감상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는 중이다.
하지만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불법복제를 막고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나 국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지난해 12월 28일 저작권법을 개정해 불법복제를 수익구조로 삼고 있는 온라인서비스 업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작게나마 마련했다. 저작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너그럽지 못한 현실에서 이 모든 노력도 사회적 동의와 지지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격려가 필요하다.
◆이준동 나우필름 사장·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nowfil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