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 IT 그리고 정부의 몫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우리 기업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광고판을 봤을 때다.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것도, 현지인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마냥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기자는 중국 샤먼(厦門)을 찾았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갈 때까지 중국 특유의 강렬한 붉은색 한자를 흘려쓴 간판들이 별 특색 없이 나열돼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달리던 중 순간 너무 반가운 광고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광고 ‘三星 Anycall’ 이었다. 내심 델·소니 등 미국·일본의 다국적 기업보다 우리 기업의 광고판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삼성전자의 최근 분위기를 떠올리며, 혹시 저 자리를 외국 경쟁사에 내주는 것이 아닐지 우려됐다.

 최근 한국 경제 성장원인 IT산업의 역동성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중국 등 후발 경쟁국의 추월에 대한 우려감만 높아가는 모습이다. 의욕이 하늘을 찌르는 중국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중국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15년간 장기 호황을 누린 80년대 초반의 한국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에는 ‘한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는 비아냥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 정책에 실망감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IT기업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빨리 찾아내 이를 외국 경쟁사에 앞서 내놓는 것이다. 여기에는 절대적으로 정부의 제도적 보조가 필수다. 하지만 업계는 숨막힐 정도로 느리다고 지적한다. 모 IT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최근 통신과 방송 융합 과정에서의 지지부진에 대해 “성질 같아서는 반 죽여놓고 싶다”고 심한 말을 내뱉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그의 저서 ‘열정을 경영하라’에서 공무원을 ‘국민생활과는 괴리된 비효율적인 규제만 만들어내는 개혁의 대상’(삼성전자 재직시절)이라고 비판했다.

 ‘혹시나’ 하는 우려 그리고 유치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동안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전쟁터에 들고나가기 위해 피땀 흘려 갈고 닦은 무기들이 서서히 녹슬고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샤먼(중국)=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