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목적이 이끄는 제품 만들기

[ET단상]목적이 이끄는 제품 만들기

 내가 꼭 탐나고 쓰고 싶은 제품으로 Y사 피아노, P사 면도기, A사 노트북을 꼽는다. 이 제품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같이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이 제품들에 열광하는 이유는 세상에 없었던 기능, 놀라운 성능이나 가격, 디자인이 멋있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왜 그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가? 이 제품들에는 만든 사람의 고뇌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과 만든 것을 쓰는 내가 서로 교감할 수 있다니….

 나의 존재가 대량생산 체제 속의 일개 소비자가 아니라 필요한 가치를 제공받았다는 충족감과 더불어 이것들은 무엇보다 신뢰를 준다. 나는 그것이 마케팅 선전 효과의 창조된 이미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난해 고향집 작은방을 뒤지다가 오래된 ‘싱거 미싱’을 찾았다. 지금은 다리와 상판은 사라지고 본체만 남았지만, 30년이 지난 이 골동품을 지금도 여전히 시골집의 어머니는 수리해 요긴하게 쓰신다.

 이 싱거 미싱을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싱거(Isaac Merritt Singer)’라는 가난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의 부인은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며 병까지 얻게 된 남편 싱거를 대신해 가정의 대소사를 돌보았다. 싱거의 부인은 용기를 잃지 않고 낮에는 빨래를 해 주고, 밤에는 삯바느질로 돈을 벌며 싱거의 병간호를 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싱거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고 문득 그런 아내가 손쉽게 바느질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연구를 시작해 드디어 재봉틀을 발명했다. 지난 2001년에 150주년 생일을 맞은 싱거사는 이미 1973년 2조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수동 재봉틀이 전자동 재봉틀로 바뀐 지금도 질 높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신뢰의 회사로 성장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는 애플리케이션 스위치나 웹 방화벽 등을 개발하는 통신장비 업체다. 처음에는 이 제품들이 새롭고 재미있어서 만들었다. 왜냐하면 다른 네트워크 제품과 달리 표준이 없어 내가 만들고 싶은 기능을 기획해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고, 그 생각을 제단하고 디자인해 색깔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차츰 제품이 만들어지면서 나는 ‘왜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제품을 써야 하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동시에 우리가 만든 제품이 진정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고 네트워크 관리자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장비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제품은 장점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드러났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제품의 탄생 목적을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가 만든 제품은 나를 반영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공을 들여 만드는 제품의 목적이 고객에게 기쁨과 신뢰를 주는 것이라 믿는다. 나아가 사람들 간에 아이덴티티(identity)를 중시하듯, 제품에서도 인간적 아이덴티티와 품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삶과 어우러져 목적이 뚜렷한 제품을 만들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는 딸 둘이 있다. 내 아버지가 나와 함께 화초를 가꾸고 같이 쓸 물건을 만들고 고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삶의 즐거움을 전해 주었듯이, 나 역시 딸에게 그러한 기쁨을 전해 주고 싶다.

 요즘은 공대를 기피한다고 한다. 자신을 비하하거나, 세상의 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자. ‘내’가 사는 목적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듯이 ‘나’의 직업에도 목적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나’를 향한 세상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절반을 엔지니어로서 회사에 투자한다. 내가 투자하는 생각과 고민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목적이 뚜렷한 제품을 만들고자 꿈꾸며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만든 스위치와 보안장비에는 나의 고뇌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어 나와 이 만들어진 제품을 쓰는 사람이 서로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영철 파이오링크 사장 hosong@pioli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