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4월과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신부의 아이비 마체페 카사부리 장관을 잇달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 70세의 카사부리 박사는 남아공방송국(SABC) 최초의 여성 이사장, 프리스테이트주 최초의 여성 주지사 등을 거쳐 지난 1999년부터 통신부 장관을 지내고 있는 맹렬 여성이다. 지난 4월 카사부리 박사의 방한은 서울에서 열린 IT장관회의 참석 때문이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카사부리 박사는 시간을 내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찾았다. 인터넷 이용률이 인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국민의 정보화를 추진할 수 있을지, 인터넷이 국민 사이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카사부리 박사는 지난 5월에 또 한국을 찾았다. 나는 총리공관의 만찬 석상에서 카사부리 박사와 잠시나마 다시 환담을 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사부리 박사가 그 먼 거리를 날아서 짧은 기간에 두 차례나 한국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근원적인 이유는 남아공의 정보화 때문이겠지만, 좀 더 시급한 요인은 아마도 2010년의 월드컵 개최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지역 최초로 FIFA 월드컵 개최국이 돼 기쁘기는 하지만, 월드컵과 같은 대형 국제 행사를 치르기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노하우가 너무나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직 3년여 남았다고는 하지만 정보통신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올림픽이건 월드컵이건 요즘의 모든 국제 행사는 일종의 첨단 IT의 경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생한 경기 장면과 각종 사건 등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매스미디어 테크놀로지는 IT와 접목돼 해마다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며 경이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공 정부로서는 2010년 월드컵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벤치마킹 대상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오는 2010년이 되면 우리의 미디어 환경은 놀랄 만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UCC의 폭발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문화 영향력의 확산은 놀랍다. 특히 지금도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놀라게 하는 소비자 생산 콘텐츠는 공유와 전파라는 웹2.0시대의 조류를 따라 양방향 디지털 문화의 거대 풍속도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점에서 PC는 점차 TV를 닮아가고 있고, TV 역시 PC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PC가 아이들의 전유물에서 가족 전체의 TV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IPTV가 실시되면 PC는 아이들 방에서 거실로 나오게 되고 가족 소통의 창(窓)으로서 기능을 확대할 것이다. 수십년 전 TV 앞에 가족이 모여들었듯, 이제는 PC와 TV의 컨버전스 모니터 앞에 모여 정담을 나눌 것이다.
보편적인 브로드밴드 접근은 정보화시대 국가의 성공을 이끄는 관건이었다. 그러나 지식정보 사회를 넘어선 지능정보 사회에서는 브로드밴드만으로는 어렵다. 브로드밴드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디지털 문화의 개화가 있어야만 진정한 선도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IPTV 등의 미디어 융합은 바로 이런 길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또 현명한 길을 찾아낼 것이다. 2010년이 되면 우리는 또 어떤 것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을까. 또 어떤 미디어 기술과 트렌드로 전 세계 월드컵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고 있을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