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이건희, 두 사람 모두 1000년 전의 칭기즈 칸처럼 경쟁 상대에 대해서 잔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천재와 범재(凡才) 두 사람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기업 경영에서 칭기즈 칸을 닮았다….’
‘김우중 비망록’ 등의 기업·정치 소설로 유명한 주치호 중견 작가가 ‘이병철 대 마쓰시타 성공 신화’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범재인 이 회장은 지난 2003년 신경영 10주년을 맞아 “21세기에는 소수의 천재가 수십만명을 먹여 살리고, 기업과 국가발전을 이끈다”며 천재 경영론을 설파한 글로벌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그러한 이 회장이 그룹 후계자 이재용 전무에게 본인의 ‘천재 경영론’이 아닌 선친이 지난 79년께 물려준 ‘경청’이란 문구를 전했다고 한다. 한 명의 천재가 먹여 살리는 기업은 역설적으로 한 명의 천재에 의해서 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회장은 모름지기 CEO라면 주변의 이야기를 경청, 이미 완성된 인재만을 찾지 말고 인재 가능성을 띤 ‘범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중을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시사 유력 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3월 20일자 특집판에서 소수 천재가 아닌 다수 범재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사를 다뤘다. 인터넷 시대에 범재가 수천개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교류, 천재가 범재를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도 “기업은 한 사람의 천재보다 힘을 합칠 수 있는 다섯 사람의 범재가 필요하다”며 범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최근 범재들의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한 교육 콘텐츠 전문 사이트가 여름 휴가철을 앞둔 직장인 9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학 학습 목적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 3명 중 1명은 이직을 위해 어학 공부를 할 것으로 밝혀졌다.
떠나는 범재를 탓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인재난과 이직난에 허덕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CEO들은 범재인 이건희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경청’이라는 문구를 가슴속에 한번쯤 새겨볼 만하다.
안수민 솔루션팀 차장@전자신문, sm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