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상 콘텐츠는 옷·신발 같은 공산품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속성이 있다. 공산품들은 개개인이 소비하는만큼 전체 물량이 줄어들지만 콘텐츠는 여러 사람이 나눠도 줄어들지도 않고 오히려 나눌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이에 따라 그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도 함께 커진다. 잘 소통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콘텐츠는 우리 몸 속을 흘러다니는 ‘피’와도 닮아 있다.
이런 이유로 콘텐츠 사업자들은 될 수 있으면 다양한 경로와 방식을 통해서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효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왔다.
케이블·위성·무선 등 전송 수단의 지속적인 발전은 이들 콘텐츠가 더욱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길을 닦아나가는 도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위 콘텐츠의 ‘원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multi use)’는 이렇듯 콘텐츠라는 상품의 존재 방식이며 수단인 것이다.
케이블TV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서 본격화된 유료 방송이 올해로 벌써 1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인터넷프로토콜TV(IPTV)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변화, 발전된 환경에 고무돼 방송·영상 콘텐츠 시장도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방송업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도적인 미디어 플랫폼(Platform) 사업자의 ‘PP(방송채널사용자업자) 쥐어짜기’와 이 같은 현실을 조정·중재·규제할 수 있는 경기 규칙의 부재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즉, 독점적 시장지배 사업자의 상업적 이해가 원활한 콘텐츠 유통과 이를 통한 더 많은 부가가치의 창출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결산에서 김재홍 의원이 제기한 유료방송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전형적 사례로 ‘케이블TV 온리(케이블에만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것)’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김 의원은 최근 tvN 채널의 스카이라이프에 대한 송출 중단 사태와 관련하여 “‘케이블TV 온리’를 조건으로 좋은 채널을 보장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의 행위는 명백한 담합”이라고 말해 이에 대한 직권조사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방송 시장에서 콘텐츠를 생산, 유통시키는 핵심 주체인 PP는 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눈치를 보느라 미디어가 새롭게 등장해도 자신의 유통 영역을 넓혀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운 매체에 공급하던 자신의 콘텐츠를 거둬들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내부적으로 원활한 유통이 차단된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라는 강력한 충격파 앞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산업은 외부의 충격에 약하다. 국내 콘텐츠 산업을 건강하게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체질을 건강하게 다져나가야 한다. 그 첫 수술은 원활한 유통을 저해하는 요소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프로그램접근규칙(PAR:Program Access Rule) 도입 움직임은 환영받아야 한다. PAR는 특정한 플랫폼 사업자와 특수 관계에 있는 PP로 하여금 정당한 프로그램 공급 대가를 제공하는 다른 플랫폼 사업자의 공급 요구를 부당하게 거절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1992년 개정된 케이블TV법을 통해 적용하고 있다.
특히 국회 문광위 정청래 의원 등 국회의원 15명이 지난 5월 14일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이 같은 ‘방송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 방송위원회에 실질적인 규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조속히 이 개정안이 통과돼 콘텐츠의 원활한 유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시청자의 볼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국내 콘텐츠 육성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성길 스카이라이프 콘텐츠본부장 moon@skyli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