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사는 패키지 소프트웨어(SW)기업이다. 패키지SW란 소만사 디비아이(DB-i)나 MS 오피스처럼 패키지에 담겨 판매되며, 버전업으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SW다.
걸작을 만들어 세계를 평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패키지SW는 두뇌한국의 신성장엔진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을’, 한국 패키지SW기업의 소원은 고객과 직접 계약하는 ‘을’이 되는 것이다.
벤처 태동 10년이 됐어도 스타벤처와 글로벌SW가 많지 않고 100억, 1000억 순익의 게임과 포털은 있어도 B2B SW기업은 없는 이유가 ‘우리의 소원은 을’에 있다. 갑을병정으로 불리는 가치사슬의 마지막 ‘정’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박탈되며, ‘갑’인 고객이 기침을 하면 폐렴으로 쓰러지는 존재다.
GE의 잭 웰치는 납품설치 기업의 잘못으로 고객의 신뢰를 잃어가는 냉동설비사업부를 매각하면서, ‘이 사업부는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고객에게 제공하는 품질 수준을 통제할 수 없다면 제품과 서비스의 판매는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패키지SW 기업이 SW분리 발주 정책을 염원해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SW산업은 가치사슬과 중간단계가 복잡하고 가격구조가 불투명해 영업 업체가 핵심기술 업체를 압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최악은 일정 및 위험관리능력 없는 업체가 마진만을 위해 끼는 경우로 끝없는 철야, 짓밟힌 자부심, 기약 없는 마감의 진흙탕 프로젝트가 되고 만다. 이런 구조에서 아무리 미래는 다르다 설득해도, 수많은 인재들이 떠나갔고 그 빈자리만큼 국내SW 수준은 후퇴했다.
소만사는 10년 동안 뛰어난 SW인재들을 대기업으로, 해외유학으로, 교수로, 고시로 떠나보내 왔다. 이는 사업을 성공시키지 못한 기업가의 잘못이 크겠지만, 산업의 구조적인 한계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술 이외의 요소가 중요하다면 누가 애써 기술력을 높이려 하겠는가. 최종 발주권자로 예상되는 업체 앞에서 문전박대 당하면서 기다리고 낙점을 받기 위해 혼신을 다해 영업하는 노력을 SW 개발에 쏟을 수는 진정 없는가. 잘 만든 SW를 제대로 평가해주고 아무 소리 없이 제값으로 사줄 수 있는 환경이 한국에는 요원한 것인가. 한 사람이 10명 몫을 하는 스타 SW 개발자에게 1억원 이상의 연봉을 쉽게 줄 수 있는 패키지SW 업체를 만들기는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우리 나라는 뛰어난 SW두뇌를 보유했음에도, 유통구조와 납품구조의 후진성, 하도급 관행으로 인해 산업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해 온 10년을 요약하면, ‘을’을 향한 고통과 노력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가치사슬 앞 단계의 기업들이 도태되면서 정에서 병, 병에서 을로 올라서 온 것이다. 후배기업들에 소만사처럼 그 고통을 견디라고 하기보다는 이제, SW산업 가치사슬이 바뀔 때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SW산업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분리발주, 품질인증, 제값받기 등 정보통신부의 주요 정책의 실현과 함께 중간단계가 늘어날 경우, 결국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고객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고객이 3억을 써도 중간업체들이 단계당 30%, 50%씩의 마진을 취하면 SW기업 입장에서는 5000만원밖에 받지 못하고 결국, 고객에게 5000만원 수준의 서비스만을 제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산은 중간에서 사라지고 인재들은 떠나가며 장기적인 제품 투자와 세계수준 제품개발은 요원해지고 고객의 불만 누적과 브랜드 저하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패키지SW업체가 영세하기에 믿지 못하고 큰 업체에 최종 발주를 맡기게 되면 패키지SW 업체는 최종 발주권자의 하도급업자로 전락하면서 더 영세해지고 중간단계가 늘어남으로써, 고객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패키지 분리발주, SW 정가제가 정착되고 중간단계 없이 SW기업이 최종 수주권자가 되면, 고객은 최상의 서비스를 누리고 SW기업은 안정된 경영구조, 인재에 대한 투자를 통하여 세계수준의 SW를 개발해내는 선순환이 가능해지며 결국 SW 코리아가 이뤄지게 된다.
엄동설한에도 희망의 씨앗은 자라게 마련이다. 50여년 전 아무런 산업 기반 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제조업 성장의 신화를 창조한 대한민국이다. 피터 드러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뛰어난 기업가 정신을 가진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은 바 있다. SW에도 그 신화가 탄생할 때가 됐다. 벤처열기를 타고 SW산업으로 들어온 인재들, 세계수준의 기업고객, 세계 최고의 유무선 인프라의 토양, SW분리발주를 비롯한 정책의 지원에서 2∼3년 후에 세계적 SW기업이 탄생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 기업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것이며 보내야만 한다. 얼마나 척박한 환경을 뚫고 나온 인동초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김대환 소만사 사장 kdh@soman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