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료방송채널들은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사오거나 혹은 지상파 프로그램 중 시청률이 높은 것을 재방송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채널이 자체 프로그램(original program)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장르에선 실험적인 단계(pilot program)를 벗어나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몇몇 프로그램은 소위 킬러 콘텐츠로 등장하게 됨에 따라 시장 내에서 자체제작 경쟁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특히 버라이어티·드라마·TV 영화 등 장르가 다양해지고 제작 규모도 대형화되고 있다.
최근 각 채널의 특성과 컨셉트에 맞는 자체 프로그램 제작이 늘어남에 따라 케이블TV가 더 이상 재방송 채널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또 지상파와 차별화한 자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상파와는 다른 인기를 얻었다.
유료방송채널들이 자체 제작을 확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경쟁환경으로 변화하면서 채널간 차별화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나 지상파 프로그램이 복수의 채널에서 중복 편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채널의 정체성마저 불분명하다. 시청자들은 이제 선호채널을 찾아 프로그램을 보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시청행태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인 논리도 뒤따른다. 외부로부터 구입하는 프로그램의 가격이 갈수록 높아져 차라리 스스로 제작하는 편이 효율인 경우가 많아졌다. 업계에서 말하는 ‘자체제작 프로그램보다 수급프로그램이 효율적이다’는 명제는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콘텐츠의 가치가 배가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계산이다. 채널들이 자기채널에서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유료방송채널들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 경향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첫째 유료방송 시장의 질적 성장을 견인한다. 가입자의 로열티를 강화하여 시청료 지불의지를 높이고 광고주에게도 높은 시청 효율성을 보장하여 광고시장의 확대를 기할 수 있다.
둘째, 한미 FTA 환경에서 미국의 막강한 채널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에 대응할 초석을 만든다고 본다. FTA 하에서 국내 방송시장에 대한 전망은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프로그램 제작 현황이 미약한 상황에서 미국사업자들에 의한 국내 시장잠식을 부정할 수는 없다.
셋째, 독립제작사의 활발한 제작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예를 들면, 올해 케이블TV 채널에서만 제작하는 드라마가 20여타이틀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파 1개 방송사가 연간 제작하는 타이틀 수와 비슷한 규모다. 이 수가 앞으로 더욱 증가하는 추세고 보면 한류를 주도하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에게는 좋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 넘어야 될 산이 아직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지상파 대비 여전히 투자 금액이 적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빈약한 제작 인프라, 영세한 제작규모, 전문인력 부족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유료방송 채널들은 지상파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되는 소재를와 기법을 선택했으며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질 높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당장 지상파 규모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프로그램 심의도 채널사업자들의 큰 고민 중 하나다. 지상파와는 다른, 케이블TV만의 특성이 담긴 프로그램을 만든다 하더라도 심의라는 장벽에 걸리면 시청자들의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이런 여러 문제점들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서 이제 막 시작된 자체제작 프로그램 열기가 식지 않고 지속되어 국내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를 주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석암 tvN 사장 sayoun@cj.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