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하면 우선 떠오르는 말이 ‘관리’다. 컴퓨터 소프트웨어(SW)는 ‘창의성’이 중요하다. 상상을 현실화해주는 기술인 SW는 창의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SW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 SW의 이 같은 특성은 관리와 한참 거리가 있다. 어쩌면 SW는 삼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삼성의 SW경쟁력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이 내리는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위기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SW라인이 많이 들어가는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자. 삼성의 휴대폰은 SW라인이 1000만 정도 들어간다. 반면에 삼성이 따라잡아야 하는 노키아는 500만 라인 정도다. 글로벌 부품 소싱은 차치하고 SW라인에서만 삼성의 휴대폰이 노키아보다 두 배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보다는 SW라인 관리가 더 문제시된다. 노키아는 SW를 제대로 관리해 마치 부품처럼 필요할 때 아무나 가져다 쓸 수 있게 잘 정리돼 있다. 삼성은 그렇지 못하다고 외부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SW라인은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SW라인이 1000만 정도니까 유지하지 2000만, 3000만 라인으로 커지면 저수지 둑이 터지듯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노키아에 비해 훨씬 적은 SW인력과 함께 기술의 ‘질’도 도마에 오른다. 삼성이 코딩과 통합 같은 난이도가 낮은 기술은 갖고 있지만 설계와 원천기술 같은 고부가 SW기술은 갖고 있지 않다고 외부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코딩 기술만 있지 SW기술은 없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63빌딩을 지으려면 SW기술이 있어야 한다. 코딩 기술은 겨우 1층짜리 건물밖에 짓지 못한다. 1층짜리 건물을 짓는 사람이 수천 명 있어도 결코 63빌딩을 짓지 못한다.
지난 수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키아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SW의 중요성을 인식, 이에 집중 투자해왔다. ‘부동의 세계 시장 1위’ 근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SW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아이폰’은 SW기술이라 할 수 있는 유저인터페이스(UI) 때문에 상한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향후 세계 휴대폰 시장은 금방 비슷해지는 디자인보다 확실한 차별화를 가져다주는 SW기술이 승패를 가를 확률이 높다. 휴대폰뿐 아니라 각종 디지털기기도 가치를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내려면 똑똑해져야 하는데 이는 SW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천하의 삼성이 이 같은 SW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을까. 삼성전자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는 한 SW전문가는 “삼성 내부에서도 SW의 중요성과 위기를 지적하는 문서가 나돌아다닌다”고 전해준다. 그는 “하지만 관료적인 기업 문화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삼성이 현재 처한 SW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며, 오직 이재용 전무나 이건희 회장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법(?)까지 제시한다. SW는 이미 작년 기준 휴대폰·자동차·전투기의 개발비 중 절반이 넘었다. 이 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 자동차업체들도 잇달아 SW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아직 삼성전자는 내부에서조차 “하드웨어 회사가 왜 SW를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노키아와 애플처럼 SW로 밸류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 경제환경에 일희일비하는, 그래서 비상경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들이 주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하드웨어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이 덫은 고부가 SW를 가지지 못한 하드웨어 회사의 한계기도 하다. 10여년 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 회장이 이제는 SW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