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포럼에서 어느 방·통융합 전문가가 물었다. “올해는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던데, 방송통신융합 이슈도 잘 마무리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바로 자답하기를, “그런데 요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표심 잡기에 바쁘던데… ”
정치학적 이해를 가지고 본다면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C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 대립은 윤리적·종교적 대립과는 다른 차원의 우적(友敵, Freund und Feind, friend and foe)관계다. 이 우적관계에서 정치적 통일을 이룩하려면 끊임없는 현실 인식과 그 현실에 대처하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정치적 ‘결단’이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여겨진 정치적 결단은 상황에 따라서는 진실을 외면한 결단일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모피어스를 찾아갔을 때, 모피어스는 두 가지 알약을 건넨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평화로운 환상 속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빨간 알약을 먹으면 원하지 않는 진실을 봐야만 한다. 양쪽 모두 결단이다. 세상에는 진실을 알고 싶어 빨간 약을 택해버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이들은 때로 파란 약을 택한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잘못된 결단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결단이라는 것을 뒤로 미룬 채 살아간다.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니면 좀 더 현실적이기 위해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세월은 가고 수많은 선택의 기회와 혜택을 놓치게 된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결단이 IPTV 법제화에 내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IPTV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느냐고 본인에게 묻는다면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대답하겠다. 사실 어떤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공하고 실패할지 사업자는 물론이고 점쟁이조차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피 말리는 순간들을 경험해야 한다. 이때 유일한 잣대는 소비자 선택과 혜택이다. 다시 말해 국민에게 당장 유익할 수 있는 서비스 선택권을 줄 수 있는지만이 결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IPTV에서 소비자 선택권 확대는 국민을 중심으로 진화하는 미디어·콘텐츠 선택권의 확대를 의미한다. 콘텐츠는 각종 기기와 플랫폼과 결합했을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인터넷 이용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재미·흥미·오락 위주의 콘텐츠 서비스가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됐지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기와 유통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국민은 오히려 취미나 교육·정보성이 높은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IPTV도 현재는 기존 방송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될지 모르나, 국민의 숨겨진 니즈(unmet needs)를 만족시키는 기회 제공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또 이는 기존의 미디어·콘텐츠기업과의 협업으로 충분히 실현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방송의 모습이 과거와 달라진만큼 더 이상의 IPTV 영역다툼식 논쟁의 고리를 끊고 업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위한 올바른 결단을 위해 정진할 때다.
국회 방통특위가 그동안 발의됐던 IPTV 관련 법안을 곧 상정하기로 하고 7월에 IPTV 법제화의 방향을 정한다는 소식은 국민을 위한 마지막 결단의 기회라 생각된다. 법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쏟아 붓는 시간과 정성도 기회비용임을 감안해서라도 입법화 작업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희망한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IPTV 법제가 반드시 통과돼 우리 국민이 다양한 서비스 선택의 자유라는 결단의 결실을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일수 정보통신공제조합 이사장 tera4667@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