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는 현대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으로 자리했다. 국내 승강기 설치대수는 34만 여대로 세계 3위의 승강기 시장이다. 도시주민이라면 어림잡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이용하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사고발생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승강기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등의 안전사고는 90건에 이른다.
승강기 문짝이 떨어져 추락하거나 갑자기 멈춘 승강기 안에서 어린아이가 몇시간씩 갇히는 등의 사고소식을 보면 관련업계 종사자로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이처럼 사고가 계속 늘어난 이유는 승강기 설치대수와 노후승강기 증가, 안전사고 신고의무화 같은 제도변경 등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승강기 관리를 담당하는 보수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의 ‘승강기 안전관리 시스템’은 승강기가 설치된 아파트·건물 등에서 일반적으로 인력이나 장비 등을 갖출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문 유지보수업체를 선정해 자체점검 관리를 위탁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승강기 점검에 필요한 유지·보수료는 10년 전 단가보다도 오히려 떨어진 게 현실이다. 과거보다 인건비와 물가는 올랐는데도 말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수의 업체 간 과당경쟁이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승강기 점검 유지·보수료를 안전비용으로 생각지 않고 무조건 깎으려고만 하는 관리주체와 입주자들의 그릇된 인식 등이 한 몫을 거들고 있다.
현재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들은 정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표준보수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계약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최근에는 승강기 한 대당 2만원도 안 되는 유지·보수 계약단가로 체결한 업체의 사례가 신문에 공개되면서 충격을 준 적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는 물리적으로 이윤창출이 불가능해지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게 된다. 서비스 품질이 곧바로 보수 품질로 이어지다 보니 안전사고 발생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용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지금과 같이 업체의 후진적인 유지·보수가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승강기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승강기 발전로드맵’에는 승강기 보수업 등록요건 강화 및 제품 안전성을 높이고 부품 인증제도 등으로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한다고 나와 있다. 또 승강기 소유자, 아파트 관리소장 등 관리책임자가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승강기를 유지·관리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승강기 결함을 알고도 수리·보수를 태만히 해 안전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해당 관리주체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정부의 승강기 발전로드맵 발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로드맵의 핵심은 승강기 이용자의 안전이다. 조항 곳곳에 승강기 관리주체의 책임강화와 유지·보수 시장의 건강성 회복에 대한 내용이 녹아 있다.
일단 승강기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틀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제도가 마련됐다고 해도 국민 의식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입주자가 고급 서비스보다 싼 가격을 선호하고 강화된 승강기 검사를 오히려 불편해 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앞으로는 경쟁력과 서비스가 미달되는 제품이나 기술은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앞으로는 적정한 가격에 최고의 승강기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시장에서 대우받고, 이용자 안전을 위해 검사를 하는 소신 있는 검사원이 인정받는 선진 시민의식이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승강기 산업 성장률 세계 3위라는 것을 명심해 관련 산업도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유대운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장 ydw@kes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