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한 분야를 꼽는다면 IT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1400만명을 넘어섰으며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무려 4000만명으로 1인당 1대꼴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IT 관련 기술과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IT가 우리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계층별로 IT 격차 또한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IT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추어 있다 한들 접근기회가 드물고 사용이 어렵다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는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돼 멸망한다’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주장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은 중요한 생존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탓인지 요즘 5∼6세의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컴퓨터나 디지털기기를 어른보다도 곧잘 다루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IT문화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년층 시각에서 보면 사회에 적응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다. 그동안 노년세대의 경험과 연륜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았다. 그것은 몸소 체험으로 습득한 지혜이며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노년세대에게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인터넷에 접속해 해결한다. IT 분야의 급속한 발달과 성장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켰지만 노인들에게는 문화적 고립과 소외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년세대의 인구 비율은 2007년 10%에서 2026년 20%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저출산에 이어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변화에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우려 또한 깊어지고 있다. 노년세대는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에 이어 IT시대를 맞아 이래저래 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미미한 수준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노인 모두가 IT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생활의 불편을 그저 감내하고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IT문화를 생활에 편리하고 유익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배움에 나서는 노년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시골에 아이들을 맡기고 일하고 있는 우리 여직원이 얼마 전 시어머니에게서 ‘아무 걱정 말고 직장생활 잘하거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답장을 보내면서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을 배우느라 고생했을 시어머니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문자뿐 아니라 e메일도 자주 주고받으며 고부간의 정을 듬뿍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요즘 젊은세대 못지않게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IT 문화를 즐기는 노년세대를 ‘웹버족(Webver)’이라 부르고 있다. ‘웹버족’은 웹(Web)과 실버(Silver)의 합성어로 IT문화에 익숙하고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는 정보화된 노년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인터넷·노트북·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새로운 유형의 노년세대는 기존의 노인과 확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키워드는 바로 ‘IT 시니어 액티비즘(IT Senior Activism)’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신념으로 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찾아 도전하는 노년세대의 행동철학은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도전정신이며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지금은 무엇보다도 지역별·연령별, 사회 계층별로 벌어지고 있는 IT정보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령화 사회의 진입이 머지않은 이때 웹버족의 출현 그리고 ‘IT 시니어 액티비즘’은 바로 우리사회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덕겸 KT 수도권서부본부장 deokkk@kt.co.kr